▲2일 오후 직장폐쇄된 경기도 안산 SJM공장에서 용역업체 '컨택터스' 직원들이 철조망이 겹겹이 쳐진 정문안쪽에서 방패를 들고 서 있다.
권우성
[기사 수정 : 9일 오후 4시 35분] 현행 대한민국 헌법 제5조 2항에서는 "국군은 국가의 안전보장과 국토방위의 신성한 의무를 수행함을 사명으로 하며, 그 정치적 중립성은 준수된다"고 규정했다. 이 조항이 갖는 의의 중 하나는, 국군을 대한민국의 최고 무력기구로 규정했다는 점이다.
헌법 제29조 2항은 경찰공무원의 공무상 손해에 대한 보상을 규정함으로써, 보조적 무력기구인 경찰 조직을 헌법 조문에 간접적으로 등장시켰다. 이처럼 현행 헌법에 따르면, 대한민국에서 무력을 보유하고 행사해야 할 집단은 일차적으로는 국군이고 이차적으로는 경찰이다.
이 외에는 어떤 개인이나 단체도 무력을 보유·행사할 수 없다는 것이 대한민국의 법정신이다. 인기리에 방영됐던 SBS 드라마 <추적자>에서 억울한 백홍석(손현주 분)이 끝내 유죄를 선고받은 사실에서 나타나듯이, 아무리 절절한 사연이 있더라도 국군이나 경찰 외에는 무력을 보유·행사할 수 없는 것이 대한민국의 법정신이다. 실제로 문민화된 대한민국 현실에서는 경찰만이 공공의 질서와 안녕을 위해, 그리고 국민의 안전과 재산을 보호를 목적으로 무력 사용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런 법정신은 불공평하게 실현되고 있다. 백홍석 같은 사람들에게는 절대로 허용되지 않는 무력의 보유·행사가 힘 있는 사람들에게 허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 부품업체인 만도와 SJM의 직장폐쇄 과정에서 사병이나 마찬가지인 용역업체가 동원된 사실에서 나타나듯이, 대한민국에는 경찰이 함부로 손댈 수 없는 사병의 공간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사병이 비대화되면 국가 존립이 위태롭다 누구나 다 알고 있듯이, 대한민국 사병의 역사는 건국 이후 64년간 계속되어 왔다. 우리는 건달 혹은 깡패라고 불리는 폭력조직들이 자체적으로 '병력'을 충원하고 유흥업소와 시장 등지에서 공공연히 '세금'을 징수해왔으며, 경찰권력이 이런 현상을 묵인해 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또 대기업들이 구사대나 용역업체를 동원해서 노동자들의 합법적 단체행동을 탄압하고 경찰은 이런 현상을 수수방관해왔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대한민국 경찰은 헌법으로부터 위임받은 무력 보유 및 행사의 권한 중 상당부분을 민간 사병들에게 떼어준 셈이다.
물론 어느 시대 어느 나라건 간에 군경이 무력을 100% 장악할 수는 없다. 사병은 언제 어디서나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사병의 존재를 무한정 방치할 수도 없다. 사병이 지나치게 비대해질 경우에는 군경이 약화되고, 그렇게 되면 국가의 존립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병의 비대화가 국가 존립에 얼마나 위험한가는 지금으로부터 약 600년 전인 14세기 말과 15세기 초의 역사에서 확인된다. 고려 말과 조선 초에 해당하는 이 시기에 나타난 사병의 비대화 현상은 고려 초기의 노비제도 개정으로부터 비롯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