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석 가천대 도시계획학과 교수
정석
한국에서 '마을만들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1990년대 중반. 정석 가천대 도시계획학과 교수(서울시 마을공동체 위원회 부위원장)는 그 배경을 이렇게 설명한다.
"80년대까지는 개발 시대였다. 87년 민주화 이후, 90년대 초는 개발시대의 정점이다. 부동산 값 올라서 신도시 만들고 재개발 하고. 교통사고도 최고 기록하고. 그렇게 90년대 초를 겪으면서 전국단위로 민주화 운동 하던 사람들이 지역으로 넘어간다. '개발시대와는 다른 새로운 시대를 열어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으로 지역 생활 운동을 한 거다. 성수대교 무너지고, 삼풍백화점 무너지고, IMF 겪으면서 '우리가 겉으로는 성장한 것 같지만 속으로는 많이 썩어있었구나' 반성을 하게 된 시기가 90년대 중후반이다."초기 마을만들기는 시민단체 주도로 진행되었다. 김은희 걷고 싶은 도시만들기 시민연대(이하 도시연대) 사무처장은 '마을만들기는 운동이다'(<우리, 마을만들기>)라는 글에서 1993년 도시연대의 안전한 통학로 만들기, 1996년 인사동 거리 활성화, 1996년 부평 상인들에 의한 부평 문화의 거리 만들기, 1996년 부산 희망세상의 지역공동체 반송마을 만들기, 1997년 대구 YMCA의 삼덕동 골목가꾸기 등을 대표적인 예로 들었다.
박원순표 '마을', 하드웨어보다 관계망에 방점 서울에서 '관 개입'의 마을만들기가 처음으로 시도된 것은 고건 서울시장 시절인 2001년 '북촌가꾸기 기본계획'. 개발로 철거 위기에 놓였던 북촌 한옥마을을 보존하는 사업이었다.
이후 오세훈 서울시장 시절인 2008년부터 2011년까지 강동구 서원마을, 성북구 선유골, 강북구 능안골, 강서구 내촌마을 등 100호 미만의 단독주택지 네 곳에서 '살기좋은 마을만들기 지구단위 계획'이 추진됐다. '서울 휴먼타운'이다.
이전의 '마을만들기'와 박원순 시장이 추진하는 '마을공동체 만들기'의 차이는 무엇일까. 정석 교수는 "이전에는 마을만들기가 주거환경개선이나 하드웨어사업에 치중했다면, 박원순 시장의 마을공동체 사업은 교육, 복지, 일자리, 문화 문제 등을 마을공동체를 중심으로 풀어나가려는 데 있다"고 말했다.
박원순 시장은 지난 7월 서초동 인재개발원에서 열린 강연에서 "큰 관계망 속에서 살아야 하는 인간이 단절돼서 혼자 살다보니 너무나 외로워서 자살을 하고 죽어간다"면서 "마을 속에서는 생존경쟁에 치여 있던 여러 가지 어려움을 내려놓고 이웃과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편히 쉴 수 있다"며 마을을 '힐링캠프'에 비유했다. 마을의 '하드웨어' 보다는 '관계망'에 방점을 찍은 것이다. 서울시가 '마을만들기'가 아닌 '마을공동체 만들기'로 사업명을 정한 데는 이러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 정석 교수의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