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새누리당 의원이 10일 서울 영등포구 타임스퀘어 광장에서 대선출마 선언을 한 뒤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개인의 것이 아니고 공익법인인데, 제가 이사장을 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관계없는 저에게 (현재 장학회를 맡고 있는 최필립) 이사장을 그만두라고 하는 게 말이 되는 것인가. 이건 법치국가에서 언어도단이다. 정수장학회는 노무현 대통령이 바로잡아야 한다며 5년 내내 힘을 기울였다. 그때 잘못이 있거나 안 된 것이 있다면 그 정권에서 해결됐을 텐데, 왜 지금 저한테 하라고 하는지 모르겠다."10일 박근혜 새누리당 의원이 한 발언이다. 대선 출마 선언 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정수장학회에 대한 입장'을 묻자 그는 다소 언성을 높이며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언어도단'이라고 표현한 그의 발언이 황당하고 듣기 거북하다.
부일장학회 강탈 주범 박정희 딸, 이사장 10년 해놓고 무관? 정수장학회가 무엇인가. 50여 년의 긴 세월이 흘렀건만, 지금도 '정수장학회' 소리만 들으면 치를 떨며 분노하는 사람들이 있다. 1961년 박정희가 주도한 5·16 쿠데타 직후 부정축재 혐의로 구속된 뒤, 이듬해 자신이 소유하던 '부일장학회' 재산을 국가에 기부하겠다는 승낙서를 쓰고 처벌을 면한 부산지역 기업인 고 김지태씨 유가족들이 그들이다.
군부에 의해 강제로 빼앗긴 '부일장학회'는 이후 '5·16장학회'로 이름이 바뀌더니 결국은 박정희의 가운데 '정'자와 부인 육영수의 끝 '수'자를 합해 '정수장학회'로 바뀌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또한 박정희의 딸, 박근혜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 1995년부터 2005년 3월까지 10여 년간 '정수장학회' 이사장직을 맡았다.
그런데도 박근혜와는 전혀 무관한 것일까? 정수장학회 얘기만 나오면 자신과 무관하다고 되풀이하는 주장을 과연 믿을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차라리 '과거를 잊고 싶다'고 솔직히 말하면 몰라도, '무관하다'고 고집하는 것은 유가족을 두 번 울리는 일이다.
박 의원의 말대로 정수장학회는 그나마 노무현 대통령 때 '바로잡아야 한다'며 힘을 기울였다. 박정희 독재정권 하의 서슬 퍼런 중앙정보부에 의해 부일장학회 소유권이 강제로 넘겨진 지 약 45년 만인 2005년 7월 22일,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진실위원회)는 "부일장학회 재산 헌납이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의 언론장악 의도에 따라 강제로 이뤄졌다"고 조사결과를 처음 발표했다.
진실위원회는 ▲ 박정희 국가 재건 최고회의 의장의 지시에 의해 수사되었음이 당시 중앙정보부 지부장이었던 박용기씨의 진술에서 확인되었으며 ▲ 1962년 6월 20일 김지태씨가 구속 상태에서 강압에 의해 작성된 기부 승낙서에 서명을 했으나 이마저도 구속 중 기부의 의혹을 지우기 위해 석방 이후인 6월 30일로 변조되었음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필적감정에 의해 확인되었으며 ▲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의 대구사범 동기인 부산일보 주필 황용주의 석방을 빌미로 한 김지태씨에 대한 재산포기 종용이 사실로 밝혀졌으며 ▲ 경향신문의 매각과정에서도 중앙정보부장 김형욱을 앞세워 몇 번의 간첩사건을 통해 압력을 행사하였음이 확인되었으며 ▲ 일련의 과정 속에 중앙정보부와 국가재건 최고회의를 비롯한 국가 주요기관의 조직적이고 치밀한 계획 하에서 이뤄졌다고 발표함으로써 오랜 의혹이 규명됐다.
"강제 헌납된 부일장학회 원소유주에게 돌려줘라"
그후 2년 후인 2007년 5월 29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1962년 국가에 의해 '강제 헌납'된 부일장학회 재산을 원소유주에게 돌려주라"고 국가에 권고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국가에 의해 저질러졌음에도 45년간 국가가 묻어온 사건, 그 사건이 다시 국가에 의해 햇빛을 보게 된 순간이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당시 진실화해위는 "부일장학회 소유이던 헌납토지(부산 서면지역 10만여 평)를 반환하되 민간매각 등으로 반환이 어려우면 그 손해를 배상하고, 땅을 돌려받아야 할 부일장학회가 이미 해체된 만큼 공익목적 재단법인을 설립해 출연하며, 헌납된 부산일보·문화방송·부산문화방송 주식(당시 3억4800만환 어치)이 정수장학회로부터 국가로 원상회복되지 않으면 국가가 원소유주인 김씨의 유가족들에게 대신 배상하라"고 권고했다.
이어 진실화해위는 "부일장학회 재산으로 설립된 정수장학회가 특정 집단이나 개인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것은 재단법인의 공익성에 반한다"며 시정할 것을 국가에 권고했다. 그러나 강제 아닌 권고라는 이유 때문에 정권이 바뀌자 다시 국가는 미적거리다가 유아무야되고 만다. 이에 대해 당시 박근혜 의원 측은 "정수장학회는 처음부터 공익법인이어서 사회에 환원된 것"이라며 "증인과 증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와서 어거지를 쓰는 것은 정치공세"라고 해명했다. 이후 이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박 의원은 초지일관 '모르쇠'로 응대해 왔다.
그런 그가 대선 출마 선언을 하면서 본인과는 무관하다고 다시 선을 그으며, 과거 정부 탓을 늘어놓아 유가족은 물론 국민들을 당혹케 만들었다. 공교롭게도 오는 14일은 '부일장학회'를 강탈해 '5·16장학회'로 이름을 바꾼 지 꼭 50년이 되는 날이기도 하다. 긴 세월동안 유감스럽게도 책임지는 사람은 고사하고 반성 없는 국가가 과연 21세기 민주국가이며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