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 낸 교통사고를 다룬 기사. '김여사'와 '중년여성'이라는 표현이 무려 8차례나 등장한다. 남성이 유발한 사고를 보도할 때는 성별을 드러내지 않거나 '~씨'로 통칭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동아일보 캡처
일가족 네 명이 모두 사망한 대형 사고였고, 가해자는 음주운전을 하다 이 끔찍한 사고를 저질렀다. 그러나 제목에도, 본문에도 운전자의 성별은 드러나지 않는다. 오직 '만취상태'였다는 사실만 언급될 뿐이다(가해 운전자는 남자였다).
두 보도는 아주 흥미로운 대비를 보여준다. 두 번째 보도가 사건을 외적 요인, '만취운전'이라는 외적 요인으로 설명하는 반면, 첫번째 보도는 '여성성'이라는 내적 요인과 결부한다. 다시 말해, '여성성' 자체를 사고의 원인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한국 언론 거의 모두가 이런 식의 보도 태도를 보인다.
남자는 실수로, 여자는 열등해서? 행동의 원인을 엉뚱한 데서 찾음으로써 고정관념과 차별을 합리화하는 '귀인편향'적 태도는 사회 곳곳에 널려 있다. 누군가 죄를 저지르면 당사자 개인을 비난하다가도, 그가 특정 지역 출신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행위를 '지역적 특성'과 결부짓는 못된 습성이 그렇다. 같은 범죄도 다른 지역 출신이 일으키면 '지역연관성'을 무시하기 때문에, 마치 특정 지역 사람만 문제를 일으키는 것으로 보이게 된다.
'김여사 신화'도 같은 방식으로 생산되고 유포된다. 사고가 일어났을 때, 운전자가 남성이면 과실이나 고장 등 원인을 찾지만, 여성이면 원인을 밝히기에 앞서 여성이라는 사실부터 조롱하고 보는 것이다. 그 결과, 여성이 유발하는 사고 횟수는 훨씬 적어도 눈에 쉽게 드러나게 되고, 여성은 사고 때마다 정체성까지 공격 받게 된다.
이런 식의 고정관념이 강화되면 사고가 나기만 해도 반사적으로 '김여사'를 떠올리게 된다. 실제로 언론보도와 인터넷에 게시된 글들을 보면, 운전자 성별을 알 수 없는 실수나 사고조차 '김여사'로 의미화되는 경우가 흔하다. 남자들이 교통사고를 낼 때마다 다음과 같은 보도가 나오면 어떨까?
음주운전에 '일가족 참변'…가해 운전자 또 '남자' 오늘 새벽 인천국제공항 고속도로에서 승용차 2대가 추돌해 일가족 4명이 모두 숨지는 참변이 일어났습니다. 역시나, 가해 차량의 운전자는 남자였습니다. 여기서 끝나면 양반이다. 앵커가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 것일까요?'라고 묻고, 전문가들이 나와 '남성의 두뇌구조'를 들먹인다고 생각해 보라. 이게 정확히 한국 여성들이 처한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다.
강자는 숨기고, 약자는 드러내고 한 사회의 지배자는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이름 자체가 없는 경우도 흔하다. 기호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무표/유표(un/markeness)'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남자를 일컫는 인칭 대명사 '그'는 남자와 여자 모두를 지칭하지만, '그녀'는 오직 여자만을 지칭한다. 남자는 그냥 가수고, 작가고, 경찰이지만, 여자는 '여가수'에, '여류 소설가'에, '여경'이다. 사회는 약자와 소수자의 정체를 꼭 집어 드러내는 경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