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대 총선 투표일을 하루 앞둔 지난 10일 낮 서울 광진구 건대입구역 네거리에서 민주통합당 한명숙 대표, 추미애 후보, 소설가 공지영씨, 정봉주 전 의원 부인 송지영씨 등이 투표참여 캠페인으로 '투표가 민생이다'가 적힌 노란풍선을 날리고 있다.
권우성
또 다른 논란의 축은 민생이다. 야권이 이번 선거에서 지나치게 반MB 혹은 정권심판론에만 매몰된 나머지 민생문제를 소홀히 하는 바람에 표심을 얻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런 '민생 우선론'은 특히 진보당이나 진보인사 혹은 '좌파'로 분류되는 사람들에게서 많이 나오는 분석이다. 그러나 이 또한 표면적이고 결과론적인 해석일 뿐이다. 2년 전 6·2 지방선거 때 가장 훌륭한 민생복지정책을 들고 나왔던 심상정 후보가 MB심판론에 밀려 중도 사퇴했던 사건을 벌써 잊었단 말인가.
이번 선거에서 민생을 가장 많이 외친 정치인은 오히려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이었다. 게다가, 소위 '좌파운동'이라고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정치경제학에 바탕을 두고 있다. 즉 경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조차 정치를 장악해야 한다는 것이 '좌파운동'의 출발점이다. "문제는 정치가 아니고 경제야"라는 언명은 적어도 좌파운동 혹은 진보운동과는 양립하기 어렵다. 경제문제 혹은 먹고 사는 문제조차도 가장 고도화된 정치의 문제 혹은 권력의 문제로 접근해야만 근본적으로 해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인류의 오랜 노력은 모두 고도의 정치투쟁이었고 첨예한 권력투쟁이었으며 따라서 결국에는 민주주의의 문제였다. 말하자면 그것이 '진짜 좌파'다. 경제문제는 경제정책이나 복지정책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물론 MB만 사라진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MB 치하에서는 아무 문제도 해결되지 않을 뿐더러 새로운 문제만 더욱 불거지는 것도 사실이지 않은가. 따라서 이번 총선 결과를 민생우선론과 정권심판론의 선택의 문제로 환원하는 분석은 본질적이지 않으며, 이런 구도로는 대선에서도 필패를 면하기 어렵다.
추악한 모습 드러나도 잘 버티는 그들...구조 문제그렇다면 이번 총선에서 야권은 무엇이 문제였을까? 어떤 교훈으로 대선을 준비해야 할까? 무엇보다 야권은 시대를 읽어야 하고 시대에 도전해야 한다(부조리한 현실에서 이미 많은 것을 가진 기득권 보수 세력은 부조리한 시대에 도전할 이유가 없다). 예컨대 MB시대는 갑자기 뚝 떨어지지 않았다. 가까이는 김대중-노무현 집권기를 '잃어버린 10년'이라며 벼르던 사람들이 있었다.
참여정부 5년 내내 이들은 노무현을 '실패한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온갖 패악스런 짓도 서슴지 않았다. 멀쩡한 경제가 갑자기 사망했고 말 한마디에 대통령이 탄핵되었다. 검찰, 고급관료, 선관위, 군 장성, 언론, 재벌 등 한국사회에서 힘깨나 써 오던 자들은 대부분 이 음모에 가담했다. 이들은 자신의 기득권이 "시대를 바꾸자"고 입 바른 소리하는 대통령 한 명 때문에 위협받는 상황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광운대 BBK 동영상'까지 억지논리로 덮으면서 MB를 대통령으로 만들어야 했던 그들에게는, 한국사회의 구조적인 모순과 병폐 속에서 자신들이 누려왔던 기득권을 지켜야 할 절박함이 있었다.
MB정권이 선출 권력으로서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폭정으로 치달은 데에는 권력을 적절히 견제하고 균형을 잡아야 할 기득권세력이 오히려 그에 빌붙어 탐욕을 취한, 그리고 그것이 수월하게 작동했던 구조적인 요인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선거로 뽑힌 권력이 얼마나 부패할 수 있는지 또 국가적인 범죄행위를 저지를 수 있는지 그 구조화된 내면을 우리는 읽어야 한다. 그들은 잃어버린 10년을 되찾은 뒤, 온갖 추악한 권력형 범죄행위가 드러나도 여태 굳건히 잘 버티고 있다. 이것은 구조적인 문제다.
예컨대 정상적인 민주국가라면 총선일정이나 그 결과와 무관하게 민간인 사찰과 증거인멸 사건만으로도 MB는 탄핵되었어야 한다. 청와대와 함께 범죄행위에 가담한 검찰이 제대로 이 사건을 수사할 리 있겠는가. 집권당이 선관위를 사이버테러해도, 불법대선자금의 정황이 새로이 드러나도, 대통령의 친인척과 측근들의 비리가 연일 쏟아져도, 정부부처가 광우병 관련해서 국민의 안전보다는 미국 농무부의 눈치나 보고 있어도, 언론이든 국가기구든 어느 하나 잘못을 바로 잡으려는 메커니즘이 작동하지 않는다. 이미 새로운 파시즘이 시작되었다고 해도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는 상황이 돼 버린 것이다. 아마도 집권여당이 이번 대선에서 정권을 재창출한다면 이런 추세는 더욱 교묘하게 강화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