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간 사용해 온 한나라당 간판을 내리고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2월 16일 여의도 당사 입구에 새 당명 '새누리당' 현판을 걸고 있다.
남소연
정치인들이 이런 몰염치를 되풀이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간단하다. 이런 짓이 통하기 때문이다. 임기중 유권자에게 코빼기 하나 안 비치고, 그들의 다급한 절규를 귀에서 윙윙거리는 '날파리' 소리만큼도 안 여겨도, 선거에 임박해 비장하게 고개를 숙이고 손을 내밀면 다시 표를 얻는 것이다.
이쯤 되면 처절한 참회극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서라도 임기중 말아먹는 게 필수일 것 같다. 그래야 '환골탈태'의 기회를 얻을 테니 말이다. 해볼 만한 장사 아닌가. 몇 년간 배를 두드리다가 다음 선거가 다가오면 몇 주 납작 엎드려 읍소하는 것이다.
게다가 요즘은 '환골탈태'가 좀 간편한가. 홍보회사에 의뢰해 로고와 상징색을 바꾸고, 당 이름은 공개모집하면 된다. 돈이 좀 들지만, 자기 돈인가. 역시 'CEO 대통령'을 둔 여당답게 전략도 기업스럽다. 영국계 석유회사 비피(BP)가 멕시코만 원유유출로 막대한 환경재앙을 입힌 후 회사 상징을 녹색 꽃모양으로 바꿨듯.
차이가 있다면, 비피는 로고를 바꾼 후에도 계속해서 책임추궁을 당하고 있고,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막대한 기업 이미지 손실을 입었다는 점이다. 한국의 정당은 새 당명과 로고만 바꿨을 뿐인데, 책임을 면하고 다음 선거에서도 '제1당'이 유력시된다고 한다. 범법자가 개명하고 옷 바꿔 입었다고 죄를 용서받는 꼴이다. 이러니 누가 임기중 유권자를 두려워하겠는가. 내가 당명 공모에 참여했다면 이런 이름을 제안했을 텐데.
'수박에 줄 긋는당.' 한국사회의 문제는 문제를 은폐한다는 점 무슨 생각을 갖고 계신 줄 안다. '그 밥에 그 나물이어서 뽑을 사람이 없다'는 생각 말이다. 이런 분노가 제대로 작동해서 아무도 안 뽑히면 좋겠는데, 현실이 어디 그런가. 어느 경우든 '똑같은 놈들' 가운데 하나가 뽑히니 문제다. 그래도 투표를 하면 내가 뽑은 사람이나 뽑지 않은 사람 가운데 한 명이 선출되지만, 포기하면 항상 내가 안 뽑은 사람이 승리한다.
이 글은 '다 똑같다'고 믿는 분을 위한 것이다.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면 선택이 쉽지 않을 것이고, 이런 분들이 겪을 혼란을 다소나마 풀어주고 싶었다. 물론 기권하는 방법이 있지만, 그건 위에서 설명한 '안 뽑은 놈만 뽑히는' 문제 이외에 또 다른 부작용을 낳는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자세히 설명하기로 하고, 잠시 이번 총선이 갖는 중요성에 대해 생각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