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1 총선 공식선거운동 첫날인 지난달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에서 열린 새누리당 홍사덕(종로), 정진석(중구) 후보 합동연설에 박근혜 중앙선대위원장이 찾아 후보들을 지원하며 시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유성호
그런데 이에 대처하는 박근혜와 새누리당의 자세는 떳떳하지 못하다. 전 정권이나 지금의 야당에 비해 그렇게 자신이 있다면 국민 앞에서 당당하게 심판을 받겠다고 나서면 된다. 우리가 집권 4년 동안 좀 모자라는 점도 있었으나 이전의 노무현 정권보다는 훨씬 더 잘 이렇게 나라를 잘 이끌어 왔으니 우리에게 계속해서 표를 주십시오, 하면 되는 것이다. 국회 절대과반을 장악하고 있는 책임 있는 집권당이라면 응당 이렇게 선거에 나서서 국민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이것이 박근혜가 늘 말하던 법과 원칙이 있는 큰 정치가 아니던가.
하지만 현실의 박근혜와 새누리당은 한편으로는 막연하고 애매한 쇄신으로 정권심판론을 피해가고(실제로 박근혜가 전면에 나서서 당명을 바꾼 것만으로도 충청권에서는 큰 효과가 있다는 분석도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능력도 없는 야당에게 의회권력을 맡기면 안 된다는 교묘한 이중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반성하고 바꾸고 쇄신하겠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두루뭉술한 수준일 뿐, 구체적인 사안에 대한 발언들을 하나하나 따져보면 결국은 자기들이 잘했다는 얘기밖에 남지 않는다.
새누리당의 이런 기만적인 이중전략이 극명하게 드러난 예가 바로 지난 3일 있었던 MBC <100분 토론>이었다. 당시 새누리당을 대표해서 패널로 나온 조동원 홍보기획본부장은 야당 쪽 추궁에 "저는 모르죠"라는 식의 무책임한 발언으로 일관해 방청객과 시청자들의 실소를 자아냈다.
선거를 코앞에 두고서 공중파 토론 프로그램에 정치 신인급 당직자를 내세운 것도 현재의 집권당으로서 비겁하고 무책임한 처사이거니와, 그렇게 조동원 본부장을 통해 그대로 드러난 새누리당의 진심이 더욱 고약스럽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모르는 것이 아니라 모르고 싶었을 것이다. 적당히 물타기를 해서 불법사찰정국을 벗어나고는 싶은데, 자칫 사건의 실체를 깊게 파헤쳐서 진실이 드러나는 것은 싫었던 게 아닌가. 그런 식으로 정권심판론만은 피하고 싶었던 것이 아닌가. 그래도 우리는 잘했다고 계속 주장하면서.
박근혜와 새누리당이 이번 선거판을 우습게 여기고 있다는 점은 이번 총선의 최대 관심지역인 부산 사상을 지역구에서도 드러난다. 사람들은 말은 안 하지만 박근혜 쪽에서 최연소 후보인 손수조를 이 지역에 공천한 것은 결국 문재인 때문임을 모두 알고 있다. 손수조의 공천으로 유력한 야권의 대권후보인 문재인으로서는 이겨도 그만이고 지면 큰 상처를 입는 선거가 되었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박근혜와 새누리당이 사상을에 관한한 지역주민들의 삶이나 지역발전을 우선에 두고 공천했다기보다 박근혜의 대선레이스를 최우선에 두고 공천했다는 의혹을 가질 수밖에 없다. 박근혜를 위해서라면 지역구 하나쯤은 경쟁후보에게 '빅엿'을 먹이기 위해 내버려도 좋다는 뜻인가? 이것이 어떻게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집권당의 선택일 수가 있는지, 부산 출신의 유권자로서 심한 모욕감을 느끼는 건 둘째 치고, 참으로 한심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어설픈 분칠과 꼼수, 박근혜스럽지 못하다앞서 말했듯이 박근혜는 한국사회의 보수를 대표하는 정치인이다(단점도 여럿 있기는 하다). 그리고 한국의 정치 지형상 야당의 지도자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보다 박근혜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한국정치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박근혜가 조금이라도 올바른 선택을 하는 것이 한국정치와 한국사회의 발전 관점에서 무척이나 중요하다. 한국의 보수가 건전한 보수로 다시 태어나지 못한다면 제아무리 진보가 유능하더라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박근혜가 조금 더 통 큰 선택을 할 수는 없었을까? 그렇게 해서 나처럼 입장이 다른 사람이 보기에도 "역시 박근혜는 참 대단하다"라는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도록 할 수는 없었을까? 그렇게 해서 그를 지지하지 않는 국민들에게도 감동의 정치를 보여줄 수는 없었던 것일까?
어쨌든 박근혜는 집권여당의 2인자로서 지난 4년 동안 한국사회를 이끌어 왔다. MB에게 핍박을 받았든 말든 그것은 그 둘 사이의 개인적인 문제일 뿐, 국민의 눈에서 보자면 박근혜는 여전히 집권세력의 가장 유력한 일원이다. 그렇다면 솔직하고 당당하게 이번 총선에서 지난 4년간의 국정에 대한 심판을 받아라. 어설픈 분칠과 꼼수로 회피하는 것은 전혀 박근혜답지 못하다.
박근혜가 반드시 털고 가야할 문제, 과거청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