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품달> 포스터
MBC
대한민국의 여심을 훔친 명품 국민드라마 <해를 품은 달>(이하 <해품달>)이 15일 드디어 끝났다. 40%를 훌쩍 넘는 시청률과 마지막 2회 결방까지, 장안에 숱한 화제를 뿌렸던 드라마였던 만큼 방송이 모두 끝나기 전부터 <해품달>에 대한 분석과 평가가 쏟아졌다.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도 삼삼오오 모여 <해품달>을 이야기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고 원작소설은 이미 80만 부 이상 팔려나갈 정도로 <해품달>의 인기는 가히 하나의 신드롬이라고 할 만하다.
<해품달>은 왜 그렇게 인기가 높았을까? 탄탄한 스토리, 아역들의 놀라운 연기, 수염 없는 미소년 같은 '꽃미남 왕'이라는 새로운 캐릭터, 타이틀 롤을 맡은 김수현의 매력, 화려한 색감, 역사에서 자유로운 판타지 사극 등 시청자들의 눈을 붙잡아 둘 요소를 <해품달>은 두루 갖추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만 말해 버리면 뭔가 좀 아쉬운 감이 있다. 그래서 나는 <해품달>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기로 했다.
<해품달>의 가장 큰 성공요인인 뭐니 뭐니 해도 탄탄한 스토리와 관련이 있는데,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세세한 스토리보다는 스토리 '구조'의 치밀함, 즉 완성도 높은 구성력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해품달>은 기본적으로 멜로드라마라서 예컨대 <선덕여왕>처럼 줄거리를 이끌어 나가는 스토리 하나하나가 치밀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다른 여타의 멜로물에서 보기 어려운 치밀한 구성력이 멜로라인에 큰 생명을 불어넣었다.
<해품달> 구성의 핵심은 한마디로 '가혹한 운명'과 '어긋남의 긴장감'이라고 할 수 있다. 주인공들의 운명이 가혹할수록 그 속의 로맨스는 그에 반비례해서 빛나는 법이다. 고전에 속하는 <로미오와 줄리엣>이 그러하고 영화 <타이타닉>도 마찬가지다. <해품달>에서는 정쟁의 희생양이 된 세자빈 연우와 그 일가의 비극, 그 뒤 기억상실로 가장 가까이서도 훤(김수현 분)을 알아보지 못하는 액받이 무녀가 되는 기구한 운명이 둘의 로맨스를 더욱 애절하게 만들었다.
특히 세자 훤과 연우(한가인 분)의 로맨스는 아직 정치나 세상물정을 전혀 모르던 어린 시절에 시작되어 연우의 죽음과 함께 그 시절 그대로 화석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이는 비극적 운명의 직접적인 원인인 윤씨 일파의 추악한 모략과 절묘하고도 선명한 대비를 이룬다.
시청자 사로잡은 <해품달> 인기비결은 탄탄한 구성나는 <해품달>을 중간부터 보기 시작한 탓에 그 당시에는 왜 훤이 중전(김민서 분)에게 그리 박하게 대하는지, 연우에 대한 연정이 왜 그리 애틋한지 100% 공감할 수가 없었다. 그 뒤 1회부터 다시 볼 기회를 갖게 된 후에는 주요 인물들의 모든 행동과 감정선에 크게 공감할 수 있었다. 이는 드라마 초반, 정확히는 아역 배우들이 등장했던 6회까지의 설정에 따라 전체 스토리의 분위기와 긴장감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음을 뜻한다. 즉, <해품달>에서는 이 설정과 구성이 충분히 뒷받침이 되었기 때문에(게다가 6회까지의 전개는 대단히 속도가 빠르다) 애절한 로맨스가 생명을 가질 수 있었다.
대부분의 멜로드라마는 처음부터 보든 중반부터 보든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해품달>은 엄청난 차이가 난다. 중반부터 띄엄띄엄 보면서 이건 그저 무녀 월의 한 맺힌 이야기구나 하고 쉽게 판단하면 큰 오산이다. 좋은 구성의 힘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예를 들면 <해품달>의 구성과 설정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는 훤이 중전과의 합방을 거부하는 이유가 다른 사극에서와 마찬가지로 단지 중전에 대한 연정이 없기 때문이라고 쉽게 생각해 버린다.
그러나 전체 구성을 잘 알고 있는 시청자들이라면 훤의 합방거부에는 원자 생산 시 자신이 외척에 의해 곧 암살될 것이라는 현실인식이 또 하나의 큰 요인으로 작용했음을 이해하고 있다. 훤은 그만큼의 시간을 버는 셈이므로 그때까지는 자신이 정적들로부터 암살되지 않을 것임을 꿰뚫어보고 정국을 운영한다. 중전에게 연심이나 최소한의 동정심이 있다 해도 합방을 거부할 수밖에 없도록 이들의 운명이 꼬여버린 것이다.
따라서 훤이 무녀 월을 구하기 위해 중전과의 합방에 응한 것은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한 일종의 도박이었고, 그런 만큼 애절함도 배가되었다. 또한 그렇게 연우와의 연이 끊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애썼던 혜각도사의 심정도 대단히 절박했음을 납득할 수 있다.
'너무나 가혹하고, 슬프지 않소? 과인도, 중전도, 형님도, 그리고, 그 아이도.' (14회, 훤)손을 벤 중전의 상처를 어루만지던 훤은 흐느끼는 중전을 품에 안고 이렇게 되뇐다. 그 넷을 가혹하게 얽은 운명이 바로 <해품달>의 원동력이다.
또한, 가혹한 운명은 주인공들의 계속된 엇갈림과 결부되어 극적 긴장감이 훨씬 높아졌다. 사람들은 뭔가가 제자리를 찾지 못하거나 약간 어긋나 있으면 그것을 똑바로 맞추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젓가락이 약간 어긋나 있거나 옷매무새가 살짝 틀어져 있으면 대부분 거의 반사적으로 반듯하게 정리한다. 드라마의 스토리도 마찬가지다. 뒤틀리고 어긋난 것을 바로 펴고 싶은 시청자들의 이런 마음을 이용하면 이들을 매일 밤 TV 앞으로 불러 모을 수 있다.
욘사마 열풍 부른 <겨울연가> 조선판 <해품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