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원 전 새누리당 의원과 남편 김재호 판사. 사진은 지난해 10월 26일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 투표소로 향하는 모습.
사진공동취재단
알다시피 사법 권력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도가니>와 <부러진 화살>이라는 두 편의 영화가 잇따라 선을 보이면서 부터였다. 세상이 알지 못했거나, 이미 기억 속에서도 흐려진 오래된 사건들이 이 정도로 큰 공감을 불러일으킨 것은 뜻밖이었다.
이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을 뿐, 오랜 세월 사법 권력이 멋대로 휘두른 칼에 상처 입은 국민이 그만큼 많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가난하고 힘 없는 이들을 감싸주지도 지켜주지 못하는 무능한 권력이면서도, 자신들을 위협하는 이들에 대해서만큼은 앞뒤 가리지 않고 잔인하게 달려드는 비열한 권력, 그것이 바로 이들 영화가 그려낸 대한민국 사법 권력의 본모습이었다.
최근 드러난 김재호 판사의 청탁 의혹은, 누군가에게는 아무리 절실한 상황에서도 가까이 하기 힘든 그 권력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저 전화 한 통만으로 얼마든지 손에 쥘 수 있는 하찮은 것임을 그대로 드러내주었다.
아직 사건의 실체가 모두 드러난 것은 아니지만, 경찰 관계자에 따르면 청탁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박은정 검사는 진술서에서 김재호 판사가 "(아내를 비난한 누리꾼을) 검찰이 기소하면, (그다음 문제는) 법원에서 알아서 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한겨레, 3월 6일자 기사). 결국 지금까지 밝혀진 정황에 따르면, 김 판사는 마땅히 사법 기관 만큼의 독립성을 인정받아야 할 검사를 멋대로 움직여 기소를 이끌어낸 뒤, 역시 하나의 독립 기관인 다른 판사를 움직여 자신의 아내에게 피해를 준 누군가에게 본때를 보여주려 한 셈이다.
<헌법의 풍경>이란 책으로 잘 알려진 김두식 경북대 교수는, 이처럼 대한민국 사법 권력의 독립성·공정성이 위협 받는 현실은 결국 우리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인간 관계'로부터 비롯된다고 꼬집는다. '아는 사이'끼리 가볍게 전화 한 통 건네거나 밥 한 끼를 먹는 그 사소한 만남들이 디케가 손에 든 저울의 균형을 무너뜨리고 있다는 뜻이다.
"절대로 가족적이어서는 안 되는 것이 바로 법조계입니다. 검사는 국가를 대신해서 범죄자와 싸움을 벌이는 존재입니다. … 판사는 거대 담론과 여론으로부터 한 발자국 떨어져 법리에 의해 냉철한 판단을 해야 하는 고독한 존재입니다. 이들 모두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덕목은 바로 독립성입니다. 사법연수원 몇 기냐에 따라서 그의 위치가 좌우되는 풍토에서 독립성 보장이란 생각하기 힘듭니다." - <헌법의 풍경> 158쪽"전화를 걸어 고발 경위를 설명했지만 기소 청탁은 하지 않았다"는 김 판사의 해명(<동아일보> 3월6일자 기사)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건을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전·현직 판사인 김재호·나경원 부부는 자신들이 대체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앞으로도 이해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서기호·이정렬 판사와 백혜련·박은정 검사 등 몇몇 법조인들이 보여준 용기 있는 선택에도 사법 개혁·검찰 개혁의 불길이 안에서부터 타오르기만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이유다.
'대한민국 언론'이 벌이는 거대한 파업MBC 노조가 지난 1월 말 총파업을 시작한 데 이어 최근 KBS와 YTN 노조도 공동 파업을 선언하고 나섰다. KBS 노조는 6일 새벽부터 총파업에 들어갔으며, YTN 노조는 오는 8일부터 사흘 동안 1차 파업을 벌일 것이라고 한다. 이미 투쟁을 시작한 <연합뉴스>도 7일 총파업 찬반 투표를 앞두고 있다. 가히 대한민국 언론 전체가 파업을 벌이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대한민국 언론 권력의 뿌리가 밑바닥에서부터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이들 언론사들이 일찍이 없던 대규모 파업을 벌이는 이유는 잃어버린 '공정성'을 되찾기 위해서다. 최근 파업에 들어간 KBS 기자협회는 "정권에 예민한 뉴스를 회피하고 약자들의 입장을 충분히 대변하지 못했다"고 반성하면서 "이젠 국민의 품으로 돌아가겠다"고 밝혔다. MBC 노조 역시 "내곡동 사저 축소보도, 서울시장 선거 편파보도, 4대강 등 현 정부 주요 실책에 대한 비판 외면 등 이루 열거하기 힘든 공정성 침해 논란이 있었"다고 토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