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정연주의 증언> 출판 기념 저자와의 대화 '이명박 정권은 왜 정연주를 제거하려 했는가?'가 열리고 있다.
권우성
판결을 듣고 법정 밖으로 나오니 기자들과 텔레비전 카메라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무죄 확정 판결에 대한 소회를 묻는다.
"우리 사회의 정의를 위해 복무하지 않고 정권의 권력을 위해 봉사하는 정치 검찰의 무모한 행태에 대한 엄중한 심판"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나를 파렴치한 중죄인으로 몰면서 나의 인격을 무참하게 짓밟고, 나의 '강제해임'의 핵심요인이 된 배임죄라는 올가미를 엮은 정치 검찰의 이름도 하나하나 거명했다.
수사담당 이기옥 당시 서울중앙지검 검사, 당시 서울중앙지검 조사부장인 박은석 현 대구지검 2차장, 당시 서울중앙지검 1차장 최교일 현 서울중앙지검장, 명동성 당시 서울중앙지검장, 임채진 당시 검찰총장의 이름을 또박또박 거명했다.
그리고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에게 사퇴를 요구했다. 그는 두 번씩이나 국회에서 나의 무죄가 대법원에서 최종 확정되면 책임을 지겠다고 밝혔던 것이다.
그러면서 나는 기자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했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점은 부끄러움을 아는 것이라고. 부끄러움을 알기에, 자신이 잘못한 것을 알면 이를 진심으로 뉘우치게 되고, 자신의 행위에 대해 사죄하고, 책임 있는 행동을 취하게 되는 법이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다르지 않다.
법원 밖에서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내가 이름을 또박또박 밝힌 대상이 정치 검찰뿐 아니었다. 나는 나의 변호를 맡아준 우리시대의 파수꾼, 민변 변호사들 이름을 고마운 나의 마음을 가득 담아 한 분 한 분 밝혔다. 민변의 큰 어른인 조준희 변호사, 당시 민변 회장인 백승헌 변호사를 비롯하여 김기중, 송호창, 한명옥 변호사의 이름을 말했다. 이 분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나는 얼마나 외롭게, 힘들게 정치 검찰과 싸웠을까 하는 생각을 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세상이 다시 뒤집어져서 인간의 권리가 무참하게 짓밟히고,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 양심의 자유가 마구 망가지고 있는 MB 정권에서 시대의 파수꾼인 민변 변호사들이 참 많이 바빠지게 되었다.
저 해맑은 눈망울의 아이들이 어른된 세상에서는...기자회견을 끝내고 법정 밖으로 걸어 나오는데 텔레비전 카메라가 앞에서 계속 나를 찍어댄다. KBS 카메라도 보인다. 마침 대법원에 현장 학습을 나온 듯한 초등학교 아이들이 우르르 내 주변에 모여든다.
"와, 텔레비전 카메라다. 우리도 같이 찍자."아이들은 해맑게 깔깔대며 내 옆에 찰싹 붙는다. 그들이 나를 알 리 없고, 나의 죄명을 알 리 없고, 정치 검찰의 행태를 알 리 없다. 저 해맑은 눈망울의 아이들이 어른이 되는 세상에는 나와 같은 일이 결코 반복되어서는 안 되는데…. 가슴이 저려왔다.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눈발 흩어지는 만경의 들판에서 운명처럼 만난 아내는 나와 결혼한 뒤 참 고생을 많이 했다. "이제 다 끝난 거예요?"라고 아내가 묻는다.
조금 시간이 지나니 지인들로부터 전화와 문자 메시지가 계속 왔다. 대부분 그렇게 이야기했다. 지극히 당연한 결과인데, 사필귀정인데, 그래도 축하드린다고. 이제 마음 고생 그만 하시라고.
그랬다. 지극히 당연한 결과인데, 사필귀정인데, 그런데도 확정 판결을 받고 나니 마음은 한결 편안해졌다. 그만큼 정치 검찰의 올가미가 혹독한 것이었다.
대법원 정문을 나와 지하철 쪽으로 걸어갔다. 저 건너 쪽으로 검찰청 건물이 보였다. 3년 5개월 전 일이 새삼스럽게 선명한 그림으로 떠오른다. 검찰은 내가 강제해임 뒤 집으로 돌아오자 바로 나를 체포하러 내 집에 들이닥쳤다. 만 30년 만에 다시 검찰에 잡혀가는 신세가 되었다. 30년 전에는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잡혀갔는데, 이번에는 배임이라는 파렴치범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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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동아일보 기자, 한겨레 워싱턴 특파원, 논설주간, kbs 사장.
기록으로 역사에 증언하려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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