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주 전 KBS사장이 제46주년 방송의 날인 2009년 9월 3일 오후 서울 명동거리에서 열리는 언론악법 원천무효 서명운동에서 시민들에게 직접 동참을 호소하기 위해 참석했다. 서명대 주위 가로수에는 정연주 전 사장이 한겨레신문 논설주간 시절 최초로 사용한 '조중동'(조선일보-중앙일보-동아일보) 단어가 포함된 구호가 붙어 있다. (자료사진)
권우성
나의 '배임죄'와 관련된 검찰 조사와 재판 전 과정을 거치면서 내 머리에서 늘 떠나지 않았던 생각이 하나 있었다. '정치 검찰과 조중동, 어쩌면 이리도 닮았을까'하는 것이었다. 전체는 보지 않고 자기들 구미에 맞는 것만 골라서 보고, 그것만 가지고 기소하고, 기사 쓰고 하는 게 영락없이 일란성 쌍둥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증언'에서 밝혔듯이 KBS와 국세청 사이에는 1994년부터 소송이 시작되었고, 특히 1999년부터 시작하여 2005년 말 서울고등법원의 조정으로 세금 분쟁이 해소될 때까지 모두 17건의 소송이 진행 중이었다. 이 17건의 재판 결과는 KBS 입장에서는 7승9패(1개 사건 미판결)였다.
제 입맛에만 맞게 한 쪽만 쳐다보다그런데 KBS가 승소한 경우도 실제 판결 내용을 보면, KBS가 이긴 게 아니다. KBS가 내건 핵심 주장은 모두 배척됐다. KBS는 법인세의 경우 "수입은 전체 수입에서 수신료 수입은 제외한 것으로 잡고, 비용은 분리할 수 없으니 '모든 비용'을 다 손금 처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KBS의 수입구조가 재판 당시 대략 수신료 40%, 광고료 60% 비율이었으니 수입은 60%만 계상을 하고, 비용은 몽땅 손금 처리를 하면 수익은 항상 마이너스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법인세를 한 푼도 안 내도 된다는 것이었다. 부가세도 마찬가지였다. 매출 세액에서 '모든 매입세액'을 공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KBS가 패소한 건은 말할 필요도 없고, 승소한 7건의 경우에도 법원은 단 한 차례의 예외 없이 KBS의 핵심 주장인 이 부분을 모두 배척했다. 판결문들은 한결같이 "수신료 수입을 제외한 익금에서 모든 비용을 손금으로 처리한다"(법인세)거나, "매출 세액에서 모든 매입세액을 공제한다"(부가세)는 주장을 모두 이유 없다고 배척했다.
이처럼 KBS의 핵심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도 KBS에 '승소' 판결을 내린 이유는 "당사자가 제출한 자료에 의하여 적법하게 부과될 정당한 세액을 산출할 수 없어서, 과세처분 전부를 취소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추계과세라는 방식을 재부과 방법으로 제시하기까지 했다.
그러니까 '승소' 판결의 핵심 사유는 '당사자'(이 경우 국세청)가 정당한 세액을 산출할 수 있는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으니 과세처분을 취소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국세청이 과세처분에 대한 입증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같은 논리로 KBS가 '패소'한 경우에는 입증 책임이 KBS에 있는데, KBS가 '정당한 세액 산출을 위한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으니 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처럼 같은 사안을 두고 '입증 책임'이 어느 쪽에 있느냐에 따라 재판부의 판단이 달랐고, 이에 따라 승패가 엇갈렸다. 그러니 KBS의 '승소'는 진정한 의미의 승소가 아니었다. 특히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KBS 핵심 주장은 모두 배척되었고, 설령 '승소' 판결에 따라 과세 처분이 취소된다 해도, 판결문에 '추계과세에 의한 재부과'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였으니, 사건이 종결되는 것이 아니었다.
국세청은 무슨 방법을 쓰든 재부과를 할 게 분명했다. 이익이 발생하는 법인에 대해 세금을 매기지 않는다면 스스로 징세권을 포기하는, 자신들의 존재이유를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검찰은 이 부분을 철저하게 외면했다. 국세청의 재부과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고 보았다면, 배임죄는 성립 불가능한데, 그들은 그 가능성을 철저하게 무시했다. 이와 관련하여 검찰이 얼마나 무리하게 일방적으로 집착했는지를 보여주는 '전율스러운 증언'이 1심 재판과정에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