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3일 방사성 세슘137이 검출된 노원구의 한 아스팔트 도로에서 간이 방사선 계측기가 시간당 최대 1.74마이크로시버트를 나타냈다. 이는 서울지역의 평균 자연 방사선량인 0.12마이크로시버트의 14배 수준이다. 이날 환경운동연합과 차일드세이브 등은 도로 인근 주민들에 대해 정부가 건강 역학조사를 실시하라고 촉구했다.
이지언
아스팔트에 섞여 들어간 방사성물질의 종류와 농도가 밝혀지면서 모두 놀랄 수밖에 없었다. 건축물과 토양을 비롯한 일상 공간에서 주로 나타나는 자연 방사성물질 라돈과 달리, 문제의 아스팔트에는 인공 방사성 핵종인 세슘137이 검출됐기 때문이다. 핵분열 과정에서 생성되는 방사성 세슘은 체내로 들어갈 경우 세포나 유전자를 공격해 암을 비롯한 질병을 일으키는 독성물질로 알려져 있다.
세슘137의 반감기가 30년이란 점을 염두에 둔다면, 아스팔트가 시공되고 1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방사능의 초기 농도가 거의 유지되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우연히 그곳을 지나던 어느 시민에 의해 계측기 경보가 울리지 않았더라면, 인근 주민들이 고농도 방사선에 노출됐을 기간이 얼마나 더 늘어났을지 아무도 모른다.
지금까지 복잡한 핵발전 기술의 통제나 방사선 오염과 관련된 정보는 주로 핵산업계와 소수의 전문가들이 독점하고 공식적인 평가를 내려왔다. 정부가 국내에서 가장 노후한 고리1호기의 수명연장 평가보고서를 공개하지 않는 것은 하나의 예시일 뿐이다.
'원자력 진흥'을 전면적인 국가정책으로 내세우는 한국 정부는 핵발전소와 방사선 오염에 대한 중요 정보를 공개하지 않거나 위험성을 축소했다는 논란에 끊임없이 휩싸여왔다. 월계동 방사성 아스팔트의 경우에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이전과는 조금 달랐다. 시민과 환경단체가 문제를 먼저 확인해서 알렸고, 무엇보다 오염원이 누구나 접근 가능한 주택가 도로였기 때문이다.
사실상 주민보호엔 무심했던 원자력안전위원회공교롭게도, 교육과학기술부에서 분리돼 원자력 안전규제를 책임지는 독립기구로 지난 10월 26일 신설된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출범한 지 일주일 만에 방사성 도로 문제와 맞닥뜨리게 됐다. 그래서 방사성 아스팔트 처리나 건강영향 평가 대목은 원자력 안전에 대한 당국의 신뢰성을 가늠하는 일종의 지표가 됐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건 발생 뒤 40일이 지난 현재까지 원자력안전위원회는 방사선 방호의 책임기관으로서 주민 보호에는 사실상 무심했을 뿐 아니라 무능력했다.
월계동 아스팔트에 고농도 방사성물질이 함유돼 있는 것으로 규명됐지만,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인근 주민들의 방사선 피폭량은 기준치 이하라며 "안전에 문제가 없다"고 단언했다. 원자력안전위는 "지역 주민이 받을 수 있는 연간 방사선량은 0.51-0.69밀리시버트(mSv)로, 원자력안전법에서 정한 일반인 연간 선량한도인 1밀리시버트 미만"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방사성 아스팔트에 대해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에 해당한다고 인정하면서도, 원자력안전위가 이를 안전하다고 평가하는 근거는 뭘까?
앞서 언급한대로, 월계동 고등학교 앞 도로의 경우 통행량이 많고 상가가 밀집한 구간이다. 그런데 원자력안전위원회는 도로에서의 방사선 노출 시간을 '매일 1시간'으로 가정했다. 10년을 이곳에서 살았다는 주민은 <국민일보>와 한 인터뷰에서 "항상 차가 다니는 도로이기 때문에 먼지가 날리고 바로 옆에 주택가와 상가가 있어 우리들은 사실상 24시간 방사능에 노출된 상태였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도로에 붙어서 24시간 생활하는 사람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어떻게 현장의 생활환경에 대해 정부 관계자가 주민들보다도 더 확신하는 것일까. 피폭량은 방사선의 세기와 시간에 비례하기 때문에, 주민들이 얼마나 방사선에 노출됐는지는 건강영향을 평가하는 데 중요하다.
왜 1시간일까? 월계동 사건과 비교할 만한 사례가 있다. 지난 10월 일본 도쿄도 세타가야구 주택가의 한 도로에서 고선량의 방사선이 계측됐을 때 문부과학성은 '매일 8시간' 기준을 가정했다. 이렇게 계산하면 연간 17밀리시버트의 피폭량에 해당해 월계동 수치의 무려 24배 수준이다. 그런데도 일본 정부가 이렇게 발표할 수 있었던 이유는 후쿠시마 사고 이후 일반인의 연간 피폭선량을 1밀리시버트에서 20배인 20밀리시버트로 상향 조정했기 때문이다.
방사선 피폭이 오히려 건강에 이로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