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우리 공동묘지망우리 공동묘지로 들어서자 빼곡한 나무 사이 곳곳에 수없이 많은 무덤들이 올록볼록 솟아 있다.
이종찬
산다는 것과 죽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싯다르타는 연기론에서 모든 것은 "인연따라 생겨난다"고 했다. 이 말은 곧 모든 것은 '인연따라 생겨나며 인연따라 사라진다'는 말과 같다. 나그네는 싯다르타가 내세운 연기론을 "이것이 있어 저것이 있고 저것이 있어 이것이 있다"라고 쉽게 풀이하고 있다.
삶과 죽음도 마찬가지다. 삶이 있어 죽음이 있으며, 죽음이 있어 삶이 있지 않겠는가. 한 시대 역사도 그러할 것이다. 압제가 있어 저항이 있으며, 저항이 있어 압제가 있지 않겠는가. 한 시대 문화는 그러한 압제와 저항이 어우러진 역사를 거울로 삼아 꽃을 피우고 알찬 열매를 맺어 또 한 생명을 위해, 또 새로운 역사를 위해 제 몸을 기꺼이 바치는 것 아니겠는가.
사람들은 흔히 공동묘지라 하면 '무섭다'라는 생각부터 먼저 하게 된다. 이는 곧 죽은 사람들 영혼들이 마치 원귀처럼 떠도는 공간이 공동묘지라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흔히 '망우리공동묘지'라 부르는 망우리공원도 그렇게 여기기 십상이겠지만 이 공원은 많이 다르다. 주말마다 이곳을 찾는 등산객들이 엄청 많은데다, 우리가 이름만 들어도 잘 알 수 있는 뛰어난 인물들이 수없이 묻혀 있기 때문이다.
이 공원에는 일제강점기 때인 193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얼룩진 역사를 살다간 사람들의 흘러간 삶이 새록새록 숨 쉬고 있다. 이 공원은 어렵고 힘겨웠던 한 시대를 살았던 뛰어난 독립지사뿐만 아니라 각계각층에서 우리나라 근대사를 이끈 선구자들의 무덤과 비석이 볼록 솟아,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다. 말 그대로 역사문화공원이다.
채동선, 차중락, 박승빈, 아사카와 다쿠미...나그네가 이 공원을 망우리공원이 아니라 '망우리역사문화공원'이라 하는 까닭은 따로 있다. 김영식(48·수필가·번역가)이 지난 2009년 4월에 펴낸 '망우리 비명으로 읽는 근현대 인물사' <그와 나 사이를 걷다>를 읽어보면 한 시대 굵직굵직한 획을 그은 뛰어난 분들이 수없이 망우리공원에 묻혀 있기 때문이다.
김영식은 이 책을 쓰기 위해 3년에 걸친 현장답사와 자료조사를 했다. 이 책에 실려 있는 망우리공원에 묻힌 탁월한 분으로는 시인 박인환, 아동문학가 소파 방정환, 화가 이인성과 이중섭, 문인 최학송과 김말봉, 김상용, 김이석, 계용묵, 시인이자 독립운동가 한용운과 박희도, 의학자 지석영과 오긍선, 서화가 오세창, 독립운동가 안창호와 조봉암 등 40여 명이 훌쩍 넘는다.
그뿐이 아니다. 망우리공원에 있다는 사실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연극 '동승'을 쓴 함세덕과 작곡가 채동선, 27세 새파란 나이에 낙엽이 되어 떨어진 가수 차중락,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한글맞춤법에 맞섰던 변호사 박승빈, 해방 정국 좌우익 갈등으로 희생된 삼학병(三學兵), 한국인들로부터 존경받는 일본인 아사카와 다쿠미, 한반도에 포플러와 아카시아를 처음 심은 사이토 오토사쿠 등도 이곳에 묻혀 있다.
▲망우리공원 안내지도1933년부터 ‘망우리 공동묘지’라 불리던 이곳은 1998년 유명한 사람들 연보비를 세우고, 산책로를 만들면서 ‘망우리공원’으로 그 이름을 바꿨다.
이종찬
"세상은 산 사람들 것, 죽은 이들은 말이 없다"
"모든 삶은 누군가에게 기억된다 / 죽어 말 없는 이와 우리 사이, / 어제와 오늘 사이, / 그와 나 사이의 능선을 걷다. / 서울시 중랑구 망우1동 산 57번지. 우리가 흔히 '망우리묘지'라고 부르는 시립묘지 망우리공원이 그곳에 있다. 대학시절, 그곳에 가까운 동네에 살 때 공원까지 산책을 한 적이 있다. 그때 본 묘지의 풍경은 오랫동안 내 기억 속에 남아있다." - '서문' 몇 토막
▲김영식 <그와 나 사이를 걷다>망우리공원 그 속내를 알기 위해서는 이 책을 꼼꼼하게 읽어보는 것이 좋다
골든에이지
망우리공원 그 속내를 알기 위해서는 이 책을 꼼꼼하게 읽어보는 것이 좋다. 김영식은 이 책 '서문'에서 "'바람이 불고 구름이 흘러가도 너는 우리 가슴에 영원히 남아 있으리.' 어느 비석에는 일찍 죽은 아들을 기리는 글이, 그 옆에는 비석조차 세울 형편이 못 됐는지 검은 페인트로 '아버님 잠드신 곳'이라고 쓴 비목이 세월의 풍상을 견디고 있었다"라고 쓰고 있다.
그는 "고개 저 너머 어느 무덤 앞, 소주병을 옆에 두고 고개를 숙인 청년에게는 또 무슨 사연이 있었던가"라며 "산 밑을 내려다보니 이곳 묘지는 이리 조용한데, 저 멀리 차 소리가 도시의 심장 소리처럼 시끄러웠다. 세상은 역시 산 사람들의 것, 죽은 이들은 말이 없었다"고 적었다.
그는 "망우리공원이라는 작은 공간은 격동의 한국 근현대사를 살다 간 인물들을 비명을 통해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작지만 크고, 유일한 공간"이라며 "일제강점기부터 1960년대까지 그 어느 때보다 파란만장한 우리 역사가 그곳 비석에서 숨을 쉰다. 당시를 살다간 고인의 비문에서, 또는 비문이 준 단서에서 그 시대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 근대 각 분야의 개척자와 선구자들이 그곳에 따로, 또 같이 누워 있다는 사실은 놀랍기 그지없다"고 되짚었다.
망우리 공동묘지를 샅샅이 훑은 이 책은 모두 3부로 나뉘어져 있다. 1부 '그 잎새에 사랑의 꿈'에 무덤처럼 볼록 솟아 있는 8꼭지, 2부 '이 땅의 흙이 되어'에 쓰러진 비석처럼 드러누워 있는 6꼭지, 3부 '한 조각 붉은 마음은'에 봉분이 사라진 자리에 뿌리박고 자라난 나무처럼 서 있는 7꼭지가 그것. 여기에 고인과 관계가 있거나 고인을 추모하려는 이들을 위해 찾아가는 길과 기일까지 꼼꼼하게 적어놓고 있다.
김영식은 누구? |
<그와 나 사이를 걷다>를 쓴 김영식은 부산에서 태어나 4살 때 서울로 올라와 망우리공원이 가까운 중랑구 중화동과 상봉동에서 대학 때까지 살았다. 그는 한국미쓰비시상사에서 10년 동안 일한 뒤 지금은 일본 무역과 번역을 하는 지원상사 대표로 있다. 문예진흥원 우수문학사이트로 뽑힌(2003년) '일본문학취미' 블로그를 통해 일본 문학과 문화를 소개하는 작업을 하고 있으며, 2002년 계간 <리토피아> 신인상(수필)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옮긴 책으로 <기러기> <라쇼몽>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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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 명지대 교수(전 문화재 청장)는 "이제는 더없이 중요한 역사 공간이 된 망우리공원을 우리는 하나의 문화재로 받아들일 때가 되었다고 생각된다"라며 "청순한 산벗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날 때 망우리공원을 거닐다 보면 인간은 어쩔 수 없는 자연의 아들임을 떠올리며 멀리 한강을 처연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썼다.
최창조 전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는 "망우리라는 땅의 성격은 대체로 연로하신 어머님의 '내 방'같은 느낌이다. 어머님에게 '내 방'은 세상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천하의 명당"이라며 "'내 방'은 나만의 '둥지'이다. 둥지는 안온함과 안전을 보장하는 곳으로 믿는다. 망우리에서 어머님의 '내 방' 맛을 보라. 죽음도 생각해보라. 이 책은 망우리 사색객(思索客)에게 좋은 참고서가 될 것"이라고 적었다.
용마산 곳곳에도 망우리공원 못지않게 많은 무덤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