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추리 마을 입구를 지키는 장승과 비석
박범기
평화마을 대추리라고 쓰인 비석과 두 개의 장승이 마을 초입에서 나를 반겨주었다. 대추리 대장군, 평화 여장군이라고 쓰인 장승은 대추리의 평화를 빌고 있었다. 아름답게 단장된 마을은 이국적인 분위기를 뽐내고 있었다. 나는 이 마을이 정부의 지원으로 만들어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을 주민의 말은 달랐다. 토지는 국유지였던 것을 개인이 산 것이고, 집을 짓는 데에서 정부의 보조는 태양열과 태양광이 전부라고 했다. 토지보상금을 받아 집을 짓고, 땅을 산 집도 있지만, 빚을 얻어 집을 지은 집도 많다고 했다.
토지공사에 따르면 정부에서 토지 보상금으로 지급한 돈은 평당 15만 원. 평당 82645원(2007년)인 공시지가의 180%라고 한다. 하지만 방효석 할아버지는 "논 15만 원 짜리 있으면 어디 보여줘 봐"라며 정부의 보상금이 터무니없이 적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농사짓던 토지 3000평과 집 한 채를 바꾼 셈이라고 했다. 그나마 집만 덩그러니 있을 뿐 생계에 대한 보장은 전혀 이뤄지고 있지 않았다.
대추리 주민의 현재 생계 수단은 공공근로이다. 이주민 지원 사업을 위해 통과된 조례안에 따르면 2014년까지 65세~75세 사이의 주민은 공공근로를 통해 소득을 올릴 수 있다. 그러나 이후의 대책은 마련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다. 대추리에서 차로 5분만 가면 추팔공단이 나온다. 마을 주민은 그곳에서라도 일할 수 있도록 정부에서 지원을 해주길 바라지만, 노인들이 전부인 그들을 공장은 받아주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