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주 전 KBS 사장이 지난해 10월 2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선고공판에 출석한 뒤 법원을 나서며 환하게 웃고 있다. 서울고법 형사5부는 세금 소송을 중단해 회사에 손해를 끼친 혐의로 기소된 정 전 사장에게 1심과 마찬가지로 무죄를 선고했다.
연합뉴스
지난 '증언'에서 밝혔듯이 <한겨레>는 지난 11월 1일, 한명숙 전 총리 무죄 판결 뒤 기사에서 나의 '배임사건'을 가리켜 ""이명박 정부 들어 진행된 검찰 수사 중 법조계에서 가장 황당한 수사로 꼽는 사례"라고 밝혔다.
그렇게 '가장 황당하게' 배임죄를 경험해 본 나로서는, 내곡동 사저 구입과 관련해 다시 불붙기 시작하는 이명박 대통령의 '배임' 논란이 심상치 않아 보인다.
나의 배임사건에 대해서는 앞으로 차근차근 자세한 내용을 풀어나가겠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배임'과 비교하기 위해 우선 간단하게 짚어보도록 하겠다. 내 사건에서 검찰이 엮어놓은 얼개는 대략 이렇다.
1994년부터 KBS와 국세청 사이에는 세금 분쟁을 둘러싸고 17건의 재판이 진행되어 왔다. 이 가운데 1심 판결이 내려진 16건에서 KBS는 7승 9패(1건 미판결)였다. 이 7건의 1심 승소판결 소액을 모두 합치면 1764억 원이고, 환급가산 이자 684억 원을 합치면 KBS는 1심 승소금액 2448억 원을 모두 국세청으로부터 환급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연임의 욕심에 사로잡힌 피고인(정연주 사장)이 예상되는 적자를 없애기 위해 서둘러 서울고등법원의 조정을 통해 환급액 556억 원만 받고, 그 차액인 1892억 원 상당의 재산상 이익을 국가(국세청)에게 취득하게 하고, 같은 액수 상당의 재산상 손해를 KBS에 입혔다는 것이다.
검찰의 공소장 맨 마지막 구절은 이렇다.
"피의자는 공사(KBS 지칭)가 조세소송을 통해 환급받을 수 있는 금액인 2448억 원(환급가산 이자 포함)을 합리적 이유 없이 포기하여 실제 환급액과의 차액인 1892억 원 상당의 재산상 이익을 국가에게 취득하게 하고 동액 상당의 재산상 손해를 공사에게 가하였다."여러 '기적적인 전제들'이 필요했던 나의 '배임사건'
검찰의 이런 주장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여러 '기적들'이 전제가 되어야 했다. 검찰은 승소가 '매우 유력'하다고 했고, 그래서 1심 승소소송 가액 전액을 (가산이자까지 포함하여) KBS가 되돌려 받을 수 있다는 것이 나의 배임죄 구성의 대전제였다.
이렇게 배임죄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추가적인 '기적적 전제들'이 필요했다. KBS가 모두 승소를 하고, 그 다음 국세청은 KBS에 돈을 환급해 주고, 그러고도 세금을 재부과하지 않는 (징세권을 포기하는) 게 전제가 되어야 했다. 재부과를 하면 KBS가 다시 세금을 물어야 하니, 환급받으나 마나 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징세권을 가진 국세청이 재부과의 징수권을 포기할 리 만무다. 더군다나 KBS가 승소한 판결에서도 재판부는 국세청이 '추계과세'를 할 수 있다고 판시하기까지 했다. 이렇게 국세청이 재부과를 할 경우, KBS는 이에 불복할 것이고, 그래서 다시 소송을 시작하게 될 터인데, 이 소송에서도 KBS가 다시 100% 이긴다는 또 다른 기적적 전제가 필요했다.
그리고 KBS와 국세청 사이의 세금 분쟁은 서울고등법원의 중재로 해소되었다. 내가 배임죄를 저질렀다면 중재를 한 서울고등법원은 배임의 공모자가 될 수밖에 없다.
나의 배임사건이 '가장 황당한 사건'이 되어버린 여러 이유들 중 몇 가지만 간단하게 추려본 것이다(이밖에도 나의 배임 사건은 자세히 들여다 보면, '어떻게 이럴수가' 하는 내용들이 많다. 앞으로의 증언에서 풀어나갈 예정이다).
내곡동 게이트의 알맹이를 전한 전 경호처장의 증언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의 배임 정황은 나의 '황당 케이스'와 다른 것 같다. 이익이 돌아간 대상이 '국가'라는 제3자도 아니고, 여러 기적적인 전제들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이익을 본 대상은 매우 구체적이고, 발생한 행위와 전후관계가 분명하다. 특히 내곡동 사저 파문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 김인종 전 대통령실 경호처장이 <신동아>와 한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들은 너무나도 생생하다.
김 전 처장의 증언에 따르면 이명박 대통령은 청와대 경호처에서 후보지로 검토한 12군데 가운데 내곡동을 추천받은 뒤 직접 현장을 둘러보고, 사저 터로 승인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매입자금은 이명박 대통령의 '개인 돈'을 사용했고, 경호처 의견을 받아 들여 아들 시형씨 이름으로 구매를 했다는 것이다. 김 전 처장은 이와 관련하여 <신동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내곡동 땅을 방문해 OK 하니까 샀지. 돈 투자하는데 내 마음대로 했겠나? (대통령의) 승인이 나니까 계약을 하는 거지.""이번 사저는 각하 개인 돈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총무수석(김백준)이 알 필요도 없지. 그러나 알기는 알았지만...""(이 대통령이) 평생 사실 집이고 개인 돈을 투자한 것."이런 발언 내용은 이명박 대통령이 내곡동 터 구매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청와대의 해명과 완전히 다른 내용이다. 청와대는 내곡동 사저 문제가 터지자, 아들 시형씨가 내곡동 땅을 구매할 때 사용한 돈 가운데 6억 원은 부인 김윤옥씨의 땅을 담보로 은행대출을 받았고, 나머지 5억2000만 원은 친인척에게 빌렸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