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엔 나쁘게 이름이 알려진 사람도 많지만 좋게 이름이 알려진 사람도 많습니다. <오마이뉴스>에서 '내가 뽑은 올해의 인물'에 대해 응모글을 써보라고 메일이 왔습니다. 그래도 인물인데 뭘 좀 내비칠 게 있어야 하지 않냐는 게 제 생각입니다. 내가 나를 뽑아 글로 쓴다? 좀 이상할 것 같습니다. 우리 가족에 대해 쓰는 것도 그렇구요. 그래서 울산 동구에서 좀 색다른 인물을 찾아 보기로 했습니다.
제가 찾는 인물은 이렇습니다. 만나도 부담없고 사람의 됨됨이가 되어 있는 분, 겸손하면서도 친절한 분, 겉모양 보고 사람을 평가하지 않는 분, 겉치레보다 정직하고 진실함을 좋아하는 분, 자신보다 남을 위해 봉사할 줄 아는 분, 어떤 한 분야에 깊이 파고드는 분, 누가 뭐라든간에 남 흉내내지 않고 자기자신으로 살아가는 분, 저는 그런 인생관을 가진 분을 찾기로 했습니다.
지난 19일 토요일 오후 3시에 저는 그런 분을 만났습니다. '더블어 숲'에서 추진한 산행에서 본 그분은 부리부리한 눈, 꾸미지 않은 모습, 해박한 지식, 자신보다 남을 위할 줄 아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분 성함은 장세동. 1953년생으로 58세 된 분이었습니다. 이미 저는 장세동이란 이름을 듣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제 주변으로 진보성향을 가진 지인들이 많은데 지인들과 만나 대화하다 보면 장세동이란 이름이 거명되지 않은 적이 드물 정도로 이름만 많이 들어 왔습니다.(사실, 처음엔 전두환 정권시절 날아가던 새도 떨어뜨린다던 그 실세와 동명이라 관심이 가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장세동이란 사람이 어떤 사람이길래?'
지인들은 한결같이 '훌륭한 사람'이라 했습니다. 제 마음에 궁금증은 자꾸만 더해갔지만 그분을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워낙 바쁜 분이라 여겼습니다. 그런 분을 울산 동구 남목 옥류천에서 열린 역사공부하며 걷기 행사에서 보게 된 것입니다. 장세동 선생님이 해설사로 참석한 것이었습니다. 반가웠습니다. 장세동 선생님은 제가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초등학교에서 가까운 곳에 살고 계셨습니다. 그분은 작은 꽃집을 운영하고 계신데 만나 뵈려고 여러번 시도 했으나 번번히 그분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나랑 인연이 없나보다'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후 찾아가지 않았는데 우연히 옥류천 산행에서 뵌 것입니다.
주변 지인들에게 듣기만 한 '그분'... 우연히 만나다
장 선생님은 걸쭉한 입담으로 옥류천 일대를 돌며 지명과 그 지명의 유래 그리고 역사에 대해서도 우리가 알기 쉽게 잘 설명해 주셨습니다. 장 선생님과 그렇게 만난 후 그분에 대해 더욱 관심이 생겼습니다. 그분을 만나 살아온 이야기를 듣고 싶었습니다. 지난 21일 월요일 아침, 학교에 출근해 운동장을 돌며 쓰레기를 빨리 줍고는 잠시 시간을 내어 장 선생님이 운영하는 꽃집을 찾아 갔습니다.
"나에 대해 내보냈다가 괜히 욕먹는 거 아닙니까?"
마침, 꽃집 안에 장 선생님이 계셨습니다. 들어가 인사하고 장 선생님 사는이야기 좀 올리고 싶다고 하니 대뜸 그렇게 말하시네요. 속으로 '역시 이분은 마음 됨됨이가 되신 분이시네'하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빈 시험지 종이 몇 장과 볼펜을 들고 가 의자에 앉아 장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고향이 어딘지부터 물어 보았습니다.
"저는 울산 동구 일산동에서 태어났어요. 지금은 초등학교지만 그때는 화진국민학교를 나왔지요. 이 국민학교란 말을 쓰면 안됩니다. 황국시민을 줄여 쓴 말입니다"
장 선생님은 울산 동구에서 태어나 울산에서 초·중·고를 나와 지금까지도 울산에서 살고 있다 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몇 년 지내다 1974년에 입대를 했어요. 그 땐 군인이 부족할 때라 처음에 일반병으로 입대를 했는데 하사관 시험을 보라해서 하사관 시험을 보고 하사관으로 군생활 하다가 다시 예비군 중대장이 부족하다하여 교육받고 소위로 예편했지요. 1977년 2월 군 제대후 1981년까지 예비군 중대장을 했지요"
장 선생님은 정치에 관심이 많은 편입니다. 손 위 형님이 계셨는데 그 형님이 정치인이어서 영향을 받은 것이라 합니다. 1982년 전두환 정권 당시 정치인이던 그 형님이 갑자기 뇌출혈로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그 후 형님이 하던 건설업체를 이어받아 해보았으나 사업 실패로 이어져 힘든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1984년이었어요. 어느날 울산 사람이던 최형우라는 분이 독일 기자가 찍은 비디오를 보자고 해서 얼마전 동구청장을 지낸 정아무개씨와 같이 보게 된 겁니다. 광주항쟁 비디오였어요. 그 땐 전두환 정권 때니깐 살벌했어요. 그래서 몰래 모여 보았던거죠. 그걸 보면서 이건 아니다 싶었어요. 그래서 저도 그 때 정치에 입문하는 계기가 되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