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
청와대
"노무현 복수만 확실하게 해 준다면, 그게 누구든 솔직히 난 그 사람을 찍고 싶은 심정입니다."학계에서 이름이 높은 어느 명문대학의 교수가 사석에서 다음 대선이 화제에 오르자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정관계와는 아무런 연고도 없고 평소 학교에서 묵묵히 연구에만 전념하던 분이라 적어도 사심에서 나온 말은 아닌 듯싶다.
내 주변에는 MB 정권 하에서 부정비리혐의로 조사를 받은 정연주 전 KBS 사장, 한명숙 전 총리, 그리고 노무현 전 대통령 등 딱 그 만큼만이라도 차기 정권에서 MB정권의 부정비리를 파헤쳐줬으면 하는 동료 과학자들이 적지 않다. 정량적인 분석과 보편적인 자연법칙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최소한의 정량적인 공정함과 법집행의 보편성에 상대적으로 민감하기 때문이다.
총선과 대선은 원래 당대 정권에 대한 심판의 의미를 갖고 있다. 그 심판이 유권자들의 '복수심'에서 우러나온 것이라면 심판의 강도는 더욱 강해질 것이 분명하다.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이른바 'MB 심판론'이 여느 선거 때의 정권 심판론보다 더 무서운 것은 그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총선에서 여권이 크게 참패한다면 상대적으로 대선에서는 심판과 복수의 의미가 퇴색될 가능성도 있다. 그 결과 여권 표는 대선에서 결집하고 야권 표는 상대적으로 이완될 여지가 많아진다. 따라서 심판과 복수는 내년 정국에서 양날의 칼로 작용할지도 모른다.
노무현, 그는 판타지를 실현한 정치인이었다집권 때 큰 인정을 못 받았을 뿐더러 생애조차 비극적으로 마감한 노무현이었지만 그의 억울함을 풀어주겠다는 사람이 사후에 오히려 훨씬 많아졌으니 그는 무덤에서나마 가장 행복한 정치인이 아닐까 싶다. 지금 주위를 둘러보면 여야와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노무현만한 정치인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노무현은 말하자면 동화 속의 영웅 같은, 동화적인 판타지를 현실에서 실현한 정치인이었다. 청문회에서 고개 뻣뻣한 독재자를 향해 명패를 집어던지고 지역주의를 깨겠다며 바보같이 계속 낙마하는 모습을 보면서, 누구나 한번쯤은 "저런 사람이 대통령이 된다면..."하는 생각을 해 봤을 것이다. 비겁한 삶을 가르쳐야 했던 600년의 역사를 바꾸자고 했을 때는 나처럼 그에게 표를 주지 않았던 사람조차도 마치 동화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만들었다.
사람들이 동화를 동경하는 이유는 그것이 도저히 현실에서 있을 수 없는,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들이기 때문이다. 노무현의 정치인생은 동화 속의 이야기를 현실로 옮겨 놓았다. 그리고 그의 비극적인 죽음은 새로운 신화를 만들었다. 차기 대선에서도 여전히 노무현의 그림자를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은 그의 '신화가 된 동화'가 역설적이게도 MB 치하에서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으레 자기 감성이 투여된 슬픈 동화와 신화적 스토리를 소중하게 여긴다. 노무현 지지층의 결집력과 충성도가 높은 것은 이 때문이다.
범야권에서는 노무현의 동화 같은 스토리가 다음 대선에서도 재현되기를 암암리에 기대하는 듯하다. 그러나 사분오열되고 지리멸렬한 야권이 박근혜라는 강력한 대세론에 맞서 문재인이든 안철수든 2002년의 노무현 역할을 해 줄 누군가를 찾아 추대하면 대역전 드라마가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는 망상에 가깝다(예컨대 안철수의 지지율이 내년 12월 투표일까지 지속될 것인지는 굉장히 불투명하다). 현실정치에서 노무현 같은 인물은 지극히 드물다. 게다가 '2002년 노무현 모델'은 이미 낡은 것이 되었다.
우리는 2002년 대선 뿐만 아니라 그 뒤의 노무현 정권 5년을 지켜보면서 새로운 세력과 치밀한 개혁 프로그램이 물리적으로 뒷받침되지 않는 후보 한 사람만으로는 명백한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10년이 지나서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설령 그 어떤 '슈퍼울트라' 후보가 나와서 당선된다 하더라도 노무현이 부딪혔던 것보다 훨씬 더 큰 한계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다행히 선거는 이길지 모르나, 역사를 바꾸지는 못한다.
따라서 우리는 인물과 함께(선거에서 후보의 중요성은 나도 인정한다) 세력과 시스템의 문제도 대단히 심각한 수준에서 고려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떤 세력과 어떤 시스템과 어떤 개혁 프로그램을 준비해야 할까?
'완전한 문명사회' 되지 못한 '야만'의 대한민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