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 창원 진해 통합 주민투표를 요구하던 시민단체
이윤기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창원시(옛 마산, 창원, 진해) 행정 구역 통합이 1년여 만에 뿌리채 흔들리고 있습니다. 지난 10월 31일 창원 지역 출신 시의원들은 본회의장 단상을 점거하고, '시청사 조기 결정 결의안'을 상정하려는 마산 지역 시의원들과 마치 날치기 국회를 연상시키는 몸싸움을 벌였습니다.
불과 며칠 후인 11월 3일 본회의에서는 마산지역 의원 중심으로 발의된 '통합창원시 청사 소재지 조기확정 촉구 결의안'을 찬성 31, 반대 24로 통과시키고, 창원지역 의원 중심으로 발의한 '통합창원시의 구 3개 시(마산, 창원, 진해) 분리 촉구 결의안'은 찬성 33, 반대 22로 가결됐습니다. 사람으로 비유하자면 결혼 1년 4개월 만에 파경을 맞아 이혼하기로 합의한 셈입니다. 당장 이혼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결혼 생활이 파경을 맞은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창원 시의원들이 청사 소재지 조기 확정 촉구 결의안 상정을 막기 위해 본회의장 단상을 점거하고 몸싸움을 벌인 것, 통합창원시를 다시 마산, 창원, 진해로 나누자는 결의안을 통과 시킨 발단은 모두 통합창원시 시청사 위치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본질은 시청사 위치가 아니라 잘못된 통합 과정 때문입니다. 도대체 창원시에서는 통합 1년 만에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요?
그리고 정부가 자랑하는 전국 최초의 행정구역 자율통합 모범(?) 사례인 창원시에서 불과 1년여 만에 3개시 분리 결의안이 통과되었는데도, 여전히 행정구역 통합을 추진하는 시, 군이 생기는 것은 왜일까요? 전국 곳곳에서 2013년 6월을 목표로 또 다시 행정구역 통합이 추진되고 있기 때문에 통합창원시 행정구역 통합 사례를 통해 바람직한 행정구역 통합의 방향과 절차를 검토하는 것이 꼭 필요한 시점입니다.
행정체제 개편은 이명박 정부 출범 초기부터 강조한 숙원사업입니다. 대통령직속 지방행정체제 개편 추진위원회가 중심이 돼 행정구역 개편논의가 여전히 되고 있고, 추진위가 마련한 통합 기준에 따라 이른바 자율통합 시도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수도권에서는 안양-군포-의왕, 성남-광주-하남에서, 강원도에서는 삼척-동해-태백, 속초-고성에서 논란이 있으며, 충청지역에서도 행정구역 통합 논의가 다시 시작되고 있습니다. 경남 도내의 진주-사천-산청을 비롯 통영-고성-거제, 거창-함양, 남해-하동 지역도 마찬가지입니다. 최근에는 김해시가 부산광역시 강서구와 통합하겠다는 건의서를 경남도에 제출하기도 했습니다.
대통령직속 지방행정체제 개편 추진위가 마련한 통합 기준을 보면 광역시 자치구와 일반 시는 인구 15만 명 이하, 군은 9만 3000명 이하를 통폐합 대상으로 제시했습니다. 추진위는 2012년 6월까지 통합 계획을 세워 2013년 6월에 지방의회 의견 수렴이나 주민투표로 통합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비슷한 절차를 거쳐 지난 2010년 7월 1일 마산, 창원, 진해를 합친 통합창원시의 경우 불과 1년여 만에 3개시 분리 결의안이 의회에서 가결되는 등 갈등과 분열이 증폭되는 상황입니다. 이명박 정부의 지방행정체제 개편을 위한 통합 시범 지역인 창원시의 사례는 앞으로 행정구역 통합과 행정체제 개편에 중요한 시금석이 될 것입니다.
'일사천리 창원시 졸속통합' 어떻게 이루어졌나
근대 도시의 역사만 100년을 넘나드는 마산, 창원, 진해시가 창원시로의 통합을 결정하는 데는 불과 1년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2009년 8월 15일 이명박 대통령의 8·15 광복절 경축사에 포함된 한 마디가 마산, 창원, 진해 통합의 불도저에 시동을 걸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8·15 광복절 경축사를 하면서 지역주의와 선거제도, 정치개혁에 관한 연설을 하던 중에 불쑥 '행정구역 개편'에 관해 언급합니다.
"행정구역 개편은 제가 이미 여러 번 그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고, 민주당과 자유선진당도 제안한 바 있습니다. 정부는 국회에 정부의 입장을 설명하고 국회의 결론을 존중할 것입니다. 이번 정기국회에서 구체적인 실천 방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입니다. 정부는 자발적으로 통합하는 지역부터 획기적으로 지원해서 행정구역 개편을 촉진하고자 합니다." (이명박 대통령 8·15 광복절 경축사 중에서)연설 전문을 아무리 살펴봐도 이 네 문장이 전부입니다. 그런데, 대통령의 8·15 경축사 이후에 정부의 행정구역 자율통합 추진은 일사천리로 진행됩니다.
2009년 8월 26일 정부의 자치단체 자율통합 지원책이 발표되고, 불과 20여 일 만인 9월 10일 마산, 창원, 진해 시장과 시의회의장, 통합추진위원장이 만나는 간담회가 열립니다. 그리고 한 달 보름 후인 9월 30일에 행안부에 행정구역 통합 신청이 이루어집니다.
500년 역사를 가진 도시의 이름과 근대 도시 역사만 100년을 넘나드는 도시의 존폐를 결정하는 논의가 불과 한 달 보름 만에 모두 이루어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당시 행정안전부 장, 차관들은 "현재는 자율적으로 행정구역을 통합하도록 유도하지만 2014년에는 강제로 통합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회유성 발언을 쏟아내고, 연말까지 자율통합을 결정하라고 압박합니다.
민주노동당과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의원들, 마산, 창원, 진해 지역의 시민단체 그리고 대다수 진해시민들의 주민투표 요구가 있었지만, 한나라당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는 시의회는 지방선거에서 '통합 찬성'을 결의해 버렸습니다. 특히 진해시의 경우 주민들의 찬반이 팽팽했고 과반수가 넘는 시의원들이 당초 주민투표에 찬성했다가 지방선거 공천권을 쥔 지역구 국회의원의 입김이 작용하자 의회에서 '통합 찬성' 결의를 해 버립니다.
결국 2010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국회에서 마산, 창원, 진해시를 통합하는 특별법이 통과되고, 3개시에서 동수로 참여한 행정구역통합추진위원회에서 통합 절차를 진행합니다.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통합시의 명칭은 창원시로 결정하지만, 통합시 청사의 위치는 마산종합운동장과 진해 구육군대학 부지를 1순위로, 창원 39사단 부지를 2순위로 해놓고 통합시 출범 이후에 의회에서 결정한다고 해 논란의 불씨를 남겨둡니다.
'통합 창원시 청사 위치 논란' 계속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