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감농사처음 시작한 친환경인증 단감농사
서재호
훈수 놓던 '들어온 돌'... 전쟁에 발을 담그다지역 주민들의 반대 열기는 높았지만 흐름은 좋지 않았다. 마음만 절박했지 싸우는 방법을 잘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에 비해 골프장 건설업체 쪽은 '프로'들이었다. 수시로 선물을 돌리며 물량 공세를 펼쳤다. 주민들을 개별 접촉해 웃돈을 주며 무섭게 땅을 매입해 들어갔다.
시간이 지나자 땅을 팔아버린 사람과 팔지 않고 버티는 사람간의 틈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상한 소문을 퍼트리고 다니며 사람들 사이를 갈라놓는 자들도 있었다. 팽팽하던 힘의 균형이 깨어지는 듯했다. 확고하던 주민들의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럴 때 경험 있는 지도자가 있어야 할 텐데 상황은 그렇지 못했다. 이 모든 걸 지켜보는 내 마음은 답답하기만 했다. 그렇다고 이곳으로 들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는 내가 나서서 이러쿵 저러쿵 할 처지도 못되었다. 어쨌거나 나는 '박힌 돌'이 아니라 '들어온 돌'이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술자리에서 만나는 지역 형님들에게 도움말을 주는 정도였다.
"
형님, 혹시 인근의 OO시나 ××시 환경단체에 아는 사람 없어요?""어, 있긴 있지.""아니 그럼 뭐해요? 어서 그쪽에 경험있는 실무자들의 도움을 받지 않고요.""음. 아무래도 그래야 겠제?"또 어떤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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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 지난 번 지역신문 기사에 우리 지역 골프장 문제가 영 이상하게 나왔던데, 신문사 항의방문 한 번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어~. 하면 좋은데 언론사 쪽에 공문이나 이런 거 보낼 줄을 모른다 아이가..."이렇게 답답하고 안타까운 마음에 술자리에서 걱정하다 보니 점점 더 참견하는 일이 많아졌다. 대책위의 형님들도 내게 물어오는 횟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렇게 몇 차례 물어보고 대답해 주던 일이 계속되다 보니 대책위에서 작성하는 성명서나 기자회견문을 손봐주기까지도 하게 됐다.
그러던 어느날 밤 대책위의 형님 세 명이 우리집을 찾아왔다. 형님들의 요구는 강경했다.
"안 되겠다. 재호 니가 본격적으로 좀 도와줘야 겠다. 니도 여기서 농사를 친환경으로 지을라 카면 골프장을 막아야 안 되겠나? 같이 하자." 몇 번을 고사하다가 어쩔 수 없이 조금은 돕기로 했다. 앞에서 나서진 않는 대신 부족하거나 빠진 부분은 내가 메우기로 했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이기도 했다.
"니 누꼬?"... 주민설명회에서 내 멱살 잡은 그 덩치그렇게 어정쩡하게 내가 개입하는 가운데 골프장 주민설명회를 연다는 군청의 공고가 붙었다. 날짜와 장소는 2008년 2월 13일. C면 면사무소 2층 강당이었다.
중요한 날이었다. 법적으로 꼭 거쳐야 하는 절차였다. 주민설명회를 거치지 않고는 골프장건설이 다음 단계로 진행될 수가 없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골프장업체와 군청은 주민설명회에 커다란 공을 들였다. 준비도 많이 하는 듯했다. 형식적이더라도 주민설명회를 하는 시늉을 해야 하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터였다.
대책위와 주민들 입장에서도 이날은 물러설 수 없는 날이었다. 날치기로라도 "땅. 땅. 땅." "주민설명회 개최를 선언합니다"하게 되는 날에는 골프장업체에 날개를 달아주는 셈이었기 때문이다.
마침내 주민설명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오후 2시로 예정된 주민설명회 장소인 면사무소 강당 입구는 사람들로 꽉 들어찼다. 일찍부터 골프장업체 직원들과 용역들이 입구를 점령해서 막아버린 거였다. 주민설명회인데 정작 주민들은 들어갈 수 없었다. 주민이 빠진 주민설명회가 시작되려는 순간이었다.
설명회장으로 들어가려는 주민들과 입구를 막아선 덩치들의 대치가 시작됐다. 주민들은 대부분 노인들이었고 군데군데 청년(이라 해봐야 40~50대들이지만)들이 몇몇 있을 뿐이었다. 입구를 막고 있는 덩치들은 서로의 팔로 스크럼을 짜고 차단벽을 만들어 버렸다. 입구가 막혀 버린 지역주민들은 복도와 계단을 가득 메웠지만 더 이상 앞으로 나갈 수 없었다.
지역의 노인들은 분통을 터뜨렸지만 인간 차단벽은 요지부동이었다. 중간중간에 섞여 있던 대책위의 형님들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저들이 이정도까지 나올 줄 몰랐다.
주민들 뒤에 서있던 나도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이제 곧 2시가 되면 저 안쪽 강당 안에서는 자기들끼리 개회선언하고 바로 끝내 버릴 텐데 이러다가는 꼼짝없이 당하겠구나 싶었다. 순간적인 결단이 필요했다. 이제 10분 정도만 지나면 2시였다. 약간의 망설임 끝에 앞으로 나섰다.
내 옆에 있던 OO시에서 온 시민단체 실무자에게 "이 모든 상황을 동영상으로 찍으세요"라고 부탁하고 앞으로 걸어 나갔다. 입구에 막아선 업체 직원들과 용역에게 다가가며 궁리했다. 이런 상황에선 저쪽의 부당성을 알리고 공분을 모으는 게 급하다고 판단했다. 이젠 뒤로 물러설수도 없다. 내 입도 그들을 정확히 향했다.
"여기는 C면 주민설명회 하는 곳입니다. 막아선 당신들은 누구입니까?""주민 설명회인데 주민들을 못 들어가게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나의 거듭되는 외침에도 그들은 침묵할 뿐이었다. 다시 외쳤다.
"
주민을 못 들어가게 하는 주민 설명회가 무슨 주민설명회입니까?" "이렇게 주민 빼고 하는 설명회는 다 무효입니다."나의 외침에 복도와 계단에 가득찬 주민들이 차츰 호응하기 시작했다. 조금 지나니 봇물 터진 것처럼 항의의 말들이 점점 더 쏟아져 나왔다. 반전된 분위기에 다시 기운을 차린 대책위 형님들은 힘으로 밀어서 입구를 뚫어 버리기로 했다.
용역들과 주민들의 밀고 당기는 힘싸움이 시작됐다. 저쪽은 덩치들이 좋았으나 숫자가 적었고 절박함이 덜했던 것 같다. 이쪽의 청년들과 노인들이 고함 속에 힘을 쏟으니 이내 인간차단벽이 허물어졌다. 오후 2시가 되기 1분 전쯤, 마침내 우리는 설명회장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때였다. 누군가 뒤에서 내 어깨를 확 나꿔챘다. 내 몸이 그 쪽 방향으로 돌자 이번에는 누군가 내 멱살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순간적으로 멱살을 잡혀 놀란 나는 내 앞의 인물을 쳐다보았다. 엄청난 덩치의 중년 남자였다. 그는 멱살을 쥔 채로 험악하게 내게 소리 질렀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니는 내가 갋아야(밟아야) 겠다. 니 누꼬?"순간 설명회장의 시선들이 모두 우리 두사람에게 향했다. 멱살 잡힌 순간, 당황은 했지만 내가 잘못한 건 없으니 나도 가만 있을 순 없었다. 나도 그 자의 멱살을 맞잡으며 소리쳤다. 맞잡는다고는 했으나 그의 긴팔에 막혀 겨우 어깻죽지 정도를 잡고 외쳤다.
"이거 못 놔? 당신 깡패야? 뭐하는 짓이야,이게!"흥분한 그 남자는 씩씩거리더니 이번에는 손뚜껑만한 주먹으로 나를 치려고 했다. 어수선한 설명회장에서 경황 없던 사람들은 그제야 놀라서 뜯어말리기 시작했다. 동네 형님들도 둘 사이에 급히 몸을 날려 떼어놓았다. 양쪽 사람들에게 안긴 채로 우리 둘은 그렇게 서로를 한동안 노려보았다.
그렇게 매섭게 쳐다보던 그 자는 주위 동료들에게 "철수하자"고 한마디 하더니 휙~ 하고 몸을 돌려 나가 버렸다. 행동대장격인 모양이었다. 다른 이들도 그를 따라 모두 나가 버렸다. 그렇게 골프장 직원과 용역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자 우리들은 환호했다. "이겼다!"
폭력으로 고소당한 아내... 모두 나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