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원장님의 미용실 풍경.
박주희
교과서에선 도시화로 이웃 간 교류가 단절됐다고 설명만 하고 그쳐도 되지만, 현실에서 그렇게 살 수는 없는 노릇. 삭막해진 동네 사람들 사이를 다시 이어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다행히도 우리 동네에는 그리웠던 사람냄새를 실컷 맡을 수 있는 곳이 있다. 바로 내가 좋아하는 구 원장(41)님의 미용실이다.
미용실을 오고 가며 만난 이들이 다리를 건너 아는 사이가 되고, 서로 몰랐던 이들은 새로운 동네 주민들을 사귀면서 왕래하는 이웃이 되곤 한다. 개업 7년째인 이 작은 미용실이 주민들 간의 네트워크를 만들어주는 '동네 사랑방' 역할을 하는 셈이다. 실제로 17일
미용실에서 만난 두 명의 손님 역시도 미용실에서 인연을 맺은 사이라고 했다. 서로 얼굴도 모르고 지나쳤을 사람들이 미용실을 통해 얼굴을 익히게 되고 일상을 공유하는 사이로 발전해 나간다.
매번 머리 손질을 하러 가던 곳을 아주머니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방문했다.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법한 골목 한 편에 위치한 소규모 미용실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까만 소파와 테이블이 바로 보이고 그 앞쪽엔 벽 전체를 메운 거울과 미용실 의자 세 개가 놓여 있다. 입구쪽에는 조그마한 정수기와 일회용 커피믹스가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다. 자리에 앉자마자 직접 커피를 타서 건네주시는 구 원장님의 손길에 따뜻함이 밀려왔다.
친구들은 최신 유행 퍼머나 컷을 찾아 대형 프랜차이즈 미용실로 가곤 했지만 나는 '구 원장님'만 찾았다. 6년 전, 처음 미용실을 찾았을 때도 고등학생인 나와 이런 저런 대화를 하면서 어색함을 풀어주셨던 분이기에 지금까지도 이모와 조카처럼 친근하게 지내고 있다. 그래서 집에서 입고 있던 차림으로 가도 민망하지 않다. 내가 언제 어떤 머리를 했고, 머리카락 상태가 어떤지도 훤히 알고 계시니 머리 하기 전에 머릿결이 상하지 않는 방향으로 스타일을 결정해주시곤 한다. 다른 미용실 갈 마음이 안 생기는 건 당연지사다.
영유아부터 80대까지 거리낌없이 놀러오는 곳
미용실에서 머리에 천을 두르고 있던 중년 여성은 편안해서 구 원장님을 찾는다고 했다.
"미용실에 오면 편안하게 이런 저런 이야길 나눌 수 있어 좋죠. 특히 미용실에 온 사람들끼리 공통 화제가 생기다보면 자연스레 유대감도 형성되고요. 시어머니 이야기에서부터 아이들 교육이야기까지 대화 주제도 다양해요. 아, 원장님이 저희 어머니 이야기도 잘 들어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어르신들은 어디 가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할 곳이 없는데 아주머니는 매번 잘 들어주신다고 하시더라구요." 나 역시도 굳이 머리를 다듬지 않더라도 소파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어르신들을 자주 보았다. 편하게 앉아서 아주머니랑 이런 저런 이야길 나누다 가신다. 엄마 손을 붙잡고 오는 3~4살 아이들은 놀러온 어르신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기도 한다. 미용실에 가서 3-4시간 정도 파마나 스트레이트를 하다 보면 아이 엄마와 어르신들이 나누는 대화를 자연스레 듣게 된다.
"애기 몇 개월이에요? 고 놈 참 귀엽네.""한창 말썽부릴 때라 힘들지요. 한시도 가만 있질 않으니까요.""그래도 그 때가 좋은 거야. 애기들 다 크면 같이 밥 먹을 시간도 없는 걸."시골 인심까지 훈훈하게 퍼지는 미용실... 공동체 회복의 시작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