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엑스포 과학공원
곽진성
1993년 8월 7일부터 11월 7일까지 93일 동안 대전광역시에서는 대전 세계박람회(이하 대전 엑스포)가 열렸다. 당시 대전 엑스포에 쏠린 관심과 인기는 어마어마했다. 첨단 과학이 어우러진 전시 시설은 관람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고 이를 보기 위해 방문한 관람객 수는 무려 1400만5천여 명(외국인 67만5천여 명)에 달했다.
기자도 당시 그 인파 속에 있었다. 당시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기자에게 대전 엑스포는 환상의 공간이었다. 마스코트인 '꿈돌이'는 정겨웠고 '자기부상' 열차와 '우주탐험관'은 흥미로웠다. 스스로 떠서 움직이는 자기부상열차와 입체영상이 압권인 우주탐험관은 당시 인기를 끌었던 영화 <쥐라기공원>에 버금갈 정도였다.
환상적인 전시관을 관람하기 위한 행렬은 '끝이 없는 것 같다'는 표현이 잘 어울렸다. 한번 관람을 하기 위해, 평균 몇 시간씩 걸릴 정도로 당시 대전 엑스포는 인산인해였다. 오랜 기다림 속에서도 전시관을 관람하고 나오는 사람들은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그런 대내외의 폭발적인 호응 속에 대전 엑스포는 성공적으로 진행될 수 있었다.
1993년 대전 엑스포의 성공은 대전시민에게 자부심을 가져다줬다. 그렇기에 대전 엑스포 폐막 이후에도 현장을 보존해 그때의 영광을 간직해야 한다는 여론이 컸다. 그리고 1년 후인 1994년 8월 7일, 대전시민의 바람은 이루어졌다. 대전 엑스포 과학단지가 '국민과학교육의 장'으로 새롭게 문을 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감동은 오래가지 못했다. 야심 차게 출범한 대전 엑스포 과학단지는 이후 부실화 속에 만성 적자에 시달렸다. 1999년 7월에는 대전시가 정부로부터 소유권을 넘겨받아 자본금 3136억 원(현금900억 원, 현물2263억 원)으로 새롭게 출발했지만 이듬해에만 흑자를 기록했을 뿐, 적자는 계속 이어졌다. 이런 누적적자는 전시관들의 폐관과 휴관으로 이어졌다. 급기야 대전 엑스포의 상징과도 같던 자기 부상열차와 인기 전시관이던 우주 과학관까지 운영이 중단되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민간에서 운영하는 엑스포 과학공원 내 놀이시설 '꿈돌이랜드'마저 경영상 적자를 이유로 토지임대료를 체납하는 파행이 계속됐다. 결국 2008년 4월 22일, 행정안전부로부터 '청산 명령'을 받는 사태가 발생했다. 엑스포에 대한 대전시민의 자긍심이 땅바닥으로 추락하는 순간이었다. 엑스포 과학단지의 미래는 암울해 보였다.
산소 호흡기 '엑스포 과학단지 재창조사업', 되살아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