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규 KBS노조 위원장(맨 오른쪽)과 간부들이 2008년 8월8일 오전 여의도 KBS본사에 들어온 사복경찰들을 내보낸 뒤 현관입구에 앉아 구호를 외치고 있다. 그러나 20분뒤 경찰은 수백명의 경찰병력을 KBS본관에 진입시켰다.
권우성
지난 '증언'에서 2008년 봄, KBS 노조(위원장 박승규)가 나의 퇴진을 압박하기 위해 얼마나 무모하고 부도덕한 짓을 했는지를 이야기했다. 나의 퇴진을 요구하는 서명운동 때는 별개 사안인 '정연주 퇴진'과 '낙하산 사장 반대'를 하나로 묶어서 했고, 일반 국민과 전문가를 상대로 한 여론조사에서는 자기들에게 불리한 결과(응답자의 66%가 '정연주 사장 임기 보장' 지지)가 나오자 이를 묵살하고 덮어버리기까지 했다. 그런 가운데서도 당시 박승규 위원장은 "퇴진운동을 더욱 강력하게 하겠다"고 밝혔다.
'반정연주 세력'이 제기한 의혹들
이처럼 KBS 내의 일부 세력들이 나의 퇴진에 올인할 무렵인 그 즈음, 보도본부 게시판에 어느 KBS 기자가 나의 경제학 박사학위에 의문을 제기하는 글을 올렸다. 글은 부드러운 것처럼 보였지만, 내용은 "정 사장 경제학 박사 가짜 아냐?"였다. 트집을 잡기로 작정한 듯 했다. 제목도 시비조인 '정연주 박사의 학위 논문은?'이었다.
정연주 사장이 1989년 미국의 휴스턴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으셨다는데 그 박사학위 논문을 아시는 분 없으십니까. 사장의 박사학위 논문은 사원들이 한 번쯤 읽어봐야 하지요! 보통은 인물 정보나 이력서에 박사학위 논문 제목 쯤은 밝혀놓는데 찾아보기가 어려워서 그렇습니다. KBS 도서관에도 비치가 돼 있지도 않고...정연주 사장의 KBS 인물정보를 검색하면 논문란에 '약탈 가격'이라는 논문이 1994년 경제학지 'Rand Journal of Economics'에 실린 것으로 돼 있는데 이것이 박사학위 논문인 것 같지는 않고, 기고문인 것으로 보여집니다. 다른 언론사 인물정보에는 기고문으로 소개돼 있기 때문입니다. 또 이 논문은 공저로 돼 있는데, 박사학위를 공저로 딸 수 있는 것인지도 이해하기가 어렵고...'기자인 것이 부끄럽다'라는 책을 훑어보아도 7년동안 경제학 박사 공부를 했다고 하는데, 무슨 주제로 무슨 내용을 다루었는지 밝히지 않고 있는데, 그토록 오랫동안 공들여 딴 박사학위 논문제목을 왜 소개하지 않았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또한 인물 정보에 따르면 정연주 사장이 1970년 서울대학교에서 경제학 학사 학위 뒤(석사 과정을 거치지 않고) 1989년 미국 휴스턴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으셨는데, 미국에서는 석사 과정을 밟지 않고 바로 박사학위를 받을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석사과정을 밟으셨는데 기재 과정에 빠뜨린 것인지 궁금합니다. 누구 아시는 분 설명 좀 해주세요! 나의 경제학 박사학위와 관련해서는 사장 재임 때 KBS 국정조사를 앞두고 국회 문광위 소속의 어느 한나라당 의원도 이런 비슷한 의문을 제기한 적이 있다. 어쩌면 한나라당 의원과 이 의혹을 제기한 KBS 기자 사이에 정보 교환이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당시 한나라당 의원은 국정감사를 앞두고 KBS에 이런저런 자료 요청을 하면서 내 박사 학위 관련 증서와 논문을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내가 학위를 받은 휴스턴대학 홈페이지를 검색하기만 해도 금방 답이 나오는 것을 가지고 굳이 자료 요청을 하는 속내를 알 수가 없었다. 아마 검색하면 답이 나온다는 정도의 상식도 없었을 터였다. 위의 글을 보도본부 게시판에 올린 KBS 기자도 마찬가지 수준이었다.
한나라당과 KBS 기자의 수준한나라당도 그랬고, KBS내의 '반 정연주' 세력도 그랬다. 온갖 시시콜콜한 것까지 다 뒤져서 흠집을 내려했다. 그들의 눈으로 보면, 내 이력서에 석사학위가 없는 것도 의심스러웠고, 그렇게 7년 동안 고생해놓고, 박사학위에 대한 이야기를 미주알 고주알 자세하게 이야기하는 것도 의혹의 대상이었다. 그리고 미국의 4대 경제학술지 가운데 하나인 랜드 저널(Rand Journal of Economics)이 어떤 수준의 경제학술지인지, 거기 논문이 게재되는 과정이 어떠하며 논문게재가 얼마나 힘드는 일인지, 알 리가 만무했다. KBS 게시판에 글을 올린 기자는 유명 학술지의 논문게재를 두고 '기고문' 정도로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내게도 석사학위가 있다. 다만 박사학위가 있는데, 굳이 그걸 밝힐 이유가 없으니 밝히지 않을 뿐이다. 미국에는 학과에 따라, 대학에 따라 제도가 천차만별이다. 석사 박사과정을 통합해서 운영하는 곳도 있고, 분리해서 운영하는 곳도 있다. 내가 다닌 휴스턴 대학은 다른 많은 대학처럼 석사과정 뒤 미시경제학과 거시경제학 두 분야의 종합시험을 치렀다. 두 번의 기회를 주는 이 종합시험에 '실패'(Failure)하면 석사학위도 주지 않았다. 그리고 종합성적이 최고수준(Superior)이 아니고 그냥 '좋음'(Good) 수준이면, 박사과정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석사학위로 끝났다. 종합성적이 최고수준이 되어야 박사과정에 들어갈 수 있었다. 나도 두 번째 시험에서 간신히 최고점수를 얻어 박사과정에 들어갈 수 있었다. 18명으로 시작한 나의 경제학과 대학원 동기생들 가운데 박사과정에 들어간 사람은 3명 뿐이었다.
어쨌든 이런 의혹 제기에 대꾸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이 '박사학위 가짜의혹'은 의외로 쉽게 해소되었다. 사장 비서팀에 근무했던 기자(미국 유학 가서 MBA 학위를 받은 인물이다. 미국을 잘 안다)가 자기 이름을 밝히고, 보도본부 게시판에 글을 올렸는데, 그 글이 나간 뒤 박사학위 논란은 자취를 감췄다.
가짜 박사학위 의혹에 대한 이런 답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