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본부장 엄경철) 파업 보름째인 2010년 7월 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신관 앞에서 열린 '전국 조합원 총회'에서 새 노조 조합원들이 공정방송 사수와 임단협 체결 등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유성호
지금까지 두 가지 질문을 많이 받아 왔다. 첫째 질문은 "KBS가 왜 저렇게 되어 버렸느냐, 사장 하나 바뀌었다고 어떻게 저렇게 바뀔 수가 있느냐" 하는 것이다. (물론 반대로 제 자리로 돌아갔다는 사람들도 있다).
다른 하나는 "KBS 노조가 왜 저 모양인가" 하는 것이다. 한때는 정연주 사장을 몰아내기 위해 그렇게 난리 법석과 패악질을 부리고, KBS를 지키겠다며 그 앞에서 촛불을 든 시민들에게까지 시비를 걸던 그 노조가 요새는 무슨 바람이 불어 김인규 체제에 맞서 선명 투쟁을 하느냐는 것이다. 이런 질문을 하는 이들은 거의 대부분, 나를 몰아내기 위해 별짓을 다하던 노조는 수구적이라 비판받아 온 KBS '옛 노조'(KBS 노동조합)이고, 요새 김인규 체제를 비판하는 노조는 젊은 기자·피디 중심으로 2010년 결성된 KBS '새 노조'(전국언론노조 KBS 본부)라는 점을 잘 모른다.
KBS 문제를 꼼꼼하게 추적해 오지 않으면, '새 노조'와 '옛 노조'의 차이도 잘 모르고, 거기에 오로지 정연주 체제를 비판하기 위해 1직급 간부 60여 명(지금은 상당수 퇴직)이 만들었던, 그래서 지금은 존재도 없어진 '공정방송노조'라는 또 하나의 노조가 더 있다는 사실을 알 리 없다.
이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얻으려면, 그리고 최근의 '증언'을 통해 드러났던 'KBS 오늘'의 문제의 근원에 다가서려면, 2008년으로 되돌아가서 당시 정치 상황과 연관지어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를 알 필요가 있다.
특히 나의 강제 해임에 이르기까지 한나라당, 수구언론, KBS 노동조합(옛 노조) 등 3각 연대의 대공세, 그리고 이와 더불어 진행된 검찰, 감사원, 국세청, 교육부, 방송통신위원회, KBS 이사회 등 여러 권력 기관들의 해임 작전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종합적으로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이 '증언'의 전반부에서 나는 감사원의 행태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증언한 바가 있다. 그러나 그 밖의 기관, 특히 검찰과 KBS 이사회, 그리고 KBS 노조의 행태와 이를 둘러싼 KBS 안팎의 논쟁에 대한 자세한 증언은 뒤로 미뤄놓았다.
'살아 움직이는 역사 위해' 잊지 말아야 할 것과거를 자세하게 복기하고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너무나 자명하다. 역사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되며, 지금 기억하고 제대로 된 해석을 해야, 박제된 과거가 아닌 살아 움직이는 역사가 되는 법이다.
최근 일본 대지진 뉴스 홍수로 인해 불과 2주 전까지만 해도 우리사회의 총체적 난조와 위기를 보여준 사건들이 거대한 쓰나미에 휩쓸려 가버리 듯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집단적 망각의 늪에서 빠져나와 역사를 생생하게 기억하는 것이 절박한 과제임을 거듭 확인하게 된다.
구제역 침출수 문제, 이명박 대통령 후보의 특보 출신이 총영사로 가 있었던 상해 총영사관 영사들과 중국인 여인의 이른바 '색계' 파동, 국가정보원의 인도네시아 대통령 특사단 숙소 침입 사건, 한상률 전 국세청장과 BBK 사건의 에리카 김의 급작스러운 귀국과 검찰 수사, 한-EU FTA 및 한미 FTA 협정문 엉터리 번역 문제, MBC 피디수첩 손보기, 무릎 꿇고 통성기도 하는 이명박 대통령 내외의 모습, 그리고 개신교 근본주의의 편협함과 오만, 한기총 총회장 선거와 거액의 선거자금 문제… 이 모든 뉴스들이 일본 대지진 뉴스의 홍수에 묻혀 망각 속으로 묻히려 하는 주요 쟁점들이다.
2008년 2월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이 있었다. 나는 방송협회 회장 자격으로 그 취임식에 참석했다. 취임식이 끝난 뒤 대통령직을 마치고 고향인 김해 봉하마을로 떠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마중하기 위해 이명박 대통령이 함께 나란히 걸어갔다. 두 대통령이 그렇게 나란히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참 평화로운 권력 이양이구나 하는, 그렇게 한가하고도 순진한 생각을 했다.
이 보다 앞서 2007년 12월 28일 청와대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이명박 당선자는 만찬 회동을 가졌다. 이 날 만난 자리에서 이명박 당선자는 노무현 대통령에게 "임기가 다하셔도 선임자시니까, 제가 선임자 우대를 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약속했던 '선임자 우대'는 혹독한 검찰 수사와 주변 파헤치기 등 처절한 정치 보복으로 나타났으며, 끝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처참한 죽음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2008년 KBS 옛 노조-한나라당-수구언론, 일제 포격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