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소비자협동조합의 경우 매장 운영과 제품 취급 과정에서 그들만의 원칙을 세워놓고 있다. 코프 아드리아티카는 값싸고, 안전하고 품질 좋은 제품을 공급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고 있으며, 생태적으로 친환경적인 제품과 함께 공정한 노동에 의해 생산된 것인지도 면밀하게 따지고 있다. 사진은 볼로냐 인근 지역 농민들이 직접 재배, 생산한 야채와 과일을 보여주고 있다.
김종철
셋째는 협동조합의 정의, 가치, 원칙에 충실한 협동조합 운동을 하고 있다. 이번에 만난 레가협동조합의 관계자들은 자본과 경쟁하는 사업체로서 협동조합의 목적과 역할 등에 대한 인식이 분명하고 조합원의 경제적 참여와 민주적 운영 등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자본 기업이 영리 추구를 위해 시도하는 노동자 해고와 달리 협동조합의 가장 중요한 목적을 노동자의 안정된 고용과 물가 안정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사업을 위해 외국 협동조합과 연대하고 ICA(국제협동조합연맹)와 소통하고 있다. 이는 대자본과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나 세계 협동조합의 연대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레가생협이 초국적 자본의 횡포에 대항하여 프랑스 생산자협동조합과 협력하는 것은 몬드라곤 생협이 독일, 프랑스의 생협과 연대하여 까르푸와 경쟁하는 것과 함께 의미가 크다. ICA나 유럽의 협동조합과 교류도 거의 없고 공정무역에도 인색한 우리나라의 일부 생협이 주의 깊게 봐야할 대목이다.
마지막으로, 다양한 협동조합을 만들어 협동조합 내부 경제의 완결성을 강화하고 있다. 레가에서는 생산자, 소비자 등이 다양한 협동조합을 만들어 협력하고 기계, 건축, 건설, 유통, 농업, 식품, 금융, 서비스 등 협동조합을 통해서 못하는 분야가 없다. 특히, 완성 제품을 만드는 기계와 설비를 외부 영리 기업이 아닌 협동조합이 만들게 한다. 협동조합과 관련된 건물이나 집을 지을 때도 협동조합에서 한다. 이는 외부 의존도를 줄이고 시장의 불안정성에 대한 대비도 가능하게 한다.
1920년 일제때 시작한 한국생협의 실패와 한계이제 눈을 우리나라 생협으로 돌려보자. 우리 생협의 역사는 1920년대 일제침략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때 시작된 민간 협동조합 운동은 1930년대 총독부의 탄압, 1950년 전쟁, 1960, 70년대 독재 정권의 방해와 경영 실패 등으로 실패를 거듭했다. 그리고 환경오염이 등장한 1980년대 중반, 시대를 반영하여 지금과 같이 '친환경 농산물을 직거래하는 생협'으로 재건했다.
그런데 친환경 농산물은 생산량이 적어 전체 농산물 중에서 10% 이하며 가격이 비싸다. 그러다보니 조합원 수나 매출 규모가 작다. 출범한지 25년이 지났지만 전체 조합원은 30만 세대가 조금 넘어 전체 1692만(2009년 기준) 가구 중에 2% 정도고 매출은 약 4000억 원이다. 이는 친환경 농산물 시장의 10%, 전체 100조가 넘는 식품산업의 0.5%도 되지 못하는 규모다.
한국 생협은 우리 사회의 역사적 경험의 산물로써 성과와 한계가 함께 있다. 온난화 등 심각해지는 환경문제를 생각했을 때에는 성과지만 경제적인 약자들에게 품질 좋은 생필품을 저렴하게 공급하는 역할에 대해서는 한계가 많다. 다행히 2010년 3월 다양한 생필품을 취급할 수 있도록 법이 개정됐다. 이제 우리 생협이 해야할 과제를 생각해보고자 한다.
우선, 장기적인 전망을 세워야 한다. 사실 한국에서 레가와 같이 협동조합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30~50년 이상 걸릴 것으로 본다. 그런데 하루가 멀다 하고 대형 정치, 경제, 사회적 사건이 터지고 급변하는 한국사회에서 두 세대 가까이 지나야 하는 50년은 너무나 긴 시간일 수 있다. 그런데 협동조합은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지지 않고 긴 호흡이 필요한 운동이다. 그리고 다음 세대, 미래를 준비하지 않는 사회는 희망이 없다. 그 희망을 생협, 협동조합이 그려야 한다.
두번째는 생협에 경제적 약자들이 참여하고 노동의 문제에 대해 깊이 있게 대응해야 한다. 현재 중산층 중심의 운동에서 벗어나 다양한 계층이 참여하는 생협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노동하는 노동자, 농민, 자영업자 등의 안정된 일자리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것이 초기 협동조합의 본래 정신이고 목적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생협은 장기적으로 다양한 생필품의 취급과 취급하는 물품의 가격 그리고 노동자협동조합과 연대 등을 깊이 있게 연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