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맹봉학.
유성호
- 참여연대에서 주관한 '최저생계비 일일체험'에 참여하셨다. "연극하는 사람들의 현실도 비슷한 경우가 있다. 지금 시작하는 배우들이나 연출자들의 경우에 말이다. 고시원에서 생활하는 후배들도 있다. 1986년 내가 처음 연극을 시작할 때도 그랬다. 나도 라면 하나 끓여 먹으면서 연극했다. 개런티는 생각도 못했다. 그냥 연극이 좋아서 무대에 선 것이었으니까. 그때의 나, 그리고 지금 시작하는 배우와 연출자들은 모두 꿈이 있다. 희망도 있다. 그런데 그분들에게는 꿈도 희망도 풍요로운 먹거리도 없었다.
노쇠해진 분들, 기력도 없는데 편안한 잠자리조차도 제공이 안 되는 현실이 매우 안타까웠다. 방음도 안 돼서 옆방 사람 방귀 뀌는 소리, 화장실 물 내리는 소리, 술 먹고 싸우는 소리 별별 소리를 다 들어야 했다. 솔직히 나는 서울 용산 동자동 쪽방에 누워 최저생계비 일일체험을 하면서 한 숨도 못 잤다.
이명박 정부가 친서민 정치를 한다면서 왜 가난한 사람들의 복지를 최우선으로 해주지 않는 건지 모르겠다. 내가 묵었던 쪽방 1층엔 식당이 있었다. 한 끼 밥값이 5천 원, 6천 원이더라. 그런데 최저생계비 하루에 6300원이다. 2100원으로 한 끼 먹으라는 소리인데 이건 현실성이 없다."
- 최저생계비로 황제처럼 살았다는 차명진 한나라당 의원에게 공개편지도 쓰셨다."한 인터넷 매체에서 연락이 왔다. 차 의원이 최저생계비로 황제처럼 살았다는데 글 좀 써달라고. 나 참... 한 나라의 국회의원이 그런 마인드를 갖고 있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슬펐다. 누구나 봉사는 1년씩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게 삶인 사람들에게는 차 의원의 말이 상처가 되지 않겠나."
- 인기 드라마 <자이언트>에 출연하신다고 들었다."26부와 27부에 출연한다. 오늘 밤 촬영 예정이다. 극중에선 도로공사 현장소장 역할이다. 중요한 역할은 아니지만 그래도 대사도 몇 마디 있다. 하하. 16년 전 처음 드라마를 시작할 때 받은 등급이 있다. 18등급이 최고인데 아직 멀었고, 좀 올려주면 좋은데 잘 안 올라간다. 하하. 사실 나는 단역이니까."
뽀얀 최루연기 속에서 연극 포스터를 붙이다-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 이후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시위로 더 유명해지셨는데, 그 배경에는 87년 6월 항쟁에 참여하지 못했던 빚이 있다고 했던데."나는 대학을 못 갔다. 그러나 연극을 하면서 당시 대학생들이 읽어야 할 필독서인 사회과학서적을 읽게 됐다. 또 내가 속했던 극단도 깨어 있는 극단이었다. 상업극만 하는 곳은 아니었다. 수원의 극단 성(城)이었는데, 이 극단에서 87년 당시 나는 단종을 죽이는 세조 역할을 맡았다. 주인공이었다. 신났다.
그때 사람들은 늘 스크럼 짜고 최루탄 맞으면서 거리에서 독재타도를 외쳤다. 그 최루가스 속에서 나는 연극 포스터를 붙이고 다녔다. 그렇게 세월은 계속 흘렀다. 그러다가 지난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에 우연히 참여하게 됐다. 기성세대가 아이들의 먹거리를 책임져야 하는데 아이들 스스로 촛불을 들고 거리에 섰다는 게 참 부끄러웠다.
사실 나는 결혼을 안했기 때문에 아이도 없다. 그렇지만 어른으로서의 책임윤리 같은 게 있었다. 그런데 때마침 경찰이 촛불집회에 참가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폭력행사하는 걸 목격했는데 집에 도저히 갈 수가 없었다. 화가 났다. 뜬눈으로 아침 7시까지 있다가 집에 가 옷만 갈아입고 또 나오곤 했다. 그러다가 경찰서까지 가게 된 게다. 조사도 받고. 하하."
- 이명박 정부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보나."소통인 것 같다. 인간에게는 언제나 끝이 있는 법인데 하시는 걸 보면 끝이 없다고 착각하시는 게 아닌가 싶다. 나는 솔직히 좀 걱정된다. 도대체 임기가 끝나는 2년 뒤엔 어쩌시려고 저러나. BBK, 강남 세곡동 땅 이거 모조리 청문회 감 아닌가. 청문회 피해 망명 가시려고 그러나? 참 이해가 안 된다.
대중을 향한 죄스러운 마음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게 참 없으신 것 같다. 얼마 전엔 환경운동가들이 농성 중인 여주 이포보도 다녀왔다. 공사해 놓은 걸 보면 아하! 이게 운하가 되는 거구나 딱 보인다. 대운하의 전초라는 걸 금세 알게 된다. 그런데도 아니라고 저러시니 참 답답한 노릇이다."
맹봉학씨가 출연한 작품들 |
장편- <세친구> <노는 계집 창>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 <베사메무쵸> <하늘정원> <범죄의 재구성> <싸움의 기술> <왕의 남자> 외 다수
단편- <환생> <2001 이매진> <수사반장 트위스트 김> <트라이앵글 메모리즈> <잘돼가? 무엇이든> <바이칼> <아버지 어금니 꽉 깨무세요>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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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만히 얘기를 듣다보니 배우라기보다는 사회운동가에 더 가까운 게 아닌가 싶다."하하하하. 2008년 12월 17일 경찰에 소환될 때 후배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니, 배우가 신문 문화면에 나와야지, 자꾸 사회면에 나오면 어떻게 해? 듣고 보니 맞는 소리였다. 그러나 배우는 사회현실에 민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사회에서 벌어지는 온갖 사회현실에 눈 뜨고 깨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배역을 해도 잘 소화할 수 있다고 본다. 연극에도 늘 사회성이 반영되기 때문이다."
- 유명 배우나 가수, 연예인들은 사회활동에 적극적이면서도 나서지 않으려고 한다."당연하다. 대중들로부터 인기를 먹고 사는 연예인들이 매사에 적극적으로 자기의 입장을 개진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나처럼 이름 없는 배우라면 모를까. 하하. 그러나 한편으로 나는 이런 생각도 한다. 사회문제에 적극 참여하면서 나 스스로 성찰하게 됐다. 나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기니 점점 화가 날 일이 없어졌다.
그런 면에서 촛불집회에 참여해 경찰서까지 불려 가게 됐지만, 한편으로는 나를 성숙하게 해줬다는 측면에서 고맙게 생각한다. 사람들은 20년, 30년 후의 행복을 위해 오늘의 고통을 참아야 한다고들 한다. 그러나 나는 반대다. 내일 행복하기 위해 오늘 행복하자! 이런 주의다. 그래서 늘 웃는다."
D급 배우의 빨간 나일론 카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