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날인 2일 오전 서울 마포구 공덕동 주민센터에 마련된 제4투표소에서 유권자가 기표용지를 투표함에 넣고 있다.
유성호
[서울-자양동] "어 조금만 기다려, 투표소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첫 번째 기표소에 들어가 땅, 땅, 땅, 땅 4표를 찍은 후 투표함에 넣었다. 두 번째 기표소에 들어가 '비례대표는 어느 당을 찍지' 고민하고 있던 순간, 바로 옆 기표소에서 핸드폰 벨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곧이어 한 젊은 남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 조금만 기다려. 투표소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오전 9시경 서울 광진구 자양 4동 제1투표소는 투표를 하기 위한 유권자들로 붐볐다. 1층에 마련된 투표소에는 20여 명이 기표를 위해 줄을 섰고, 일부는 투표장 밖까지 늘어서기도 했다. 투표하러 온 사람들의 연령대도 다양했다. 아침 시간이라 주로 노년층이 많을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20~30대도 상당수 눈에 띄었다.
이름을 밝히기를 꺼린 한 투표사무원은 "오전 6시~8시 사이에 노인분들이 오고나면 아침 먹고 10시~11시가 피크라 보통 이 시간에는 한산한데, 사람들이 꾸준히 많이 오고 있다"면서 "3600명 가운데 이미 700명 정도가 투표를 하고 갔다"고 전했다. 그는 또 "오늘 날씨가 좋아서 놀러가기도 좋을 텐데, 이전 선거에 비해 젊은 사람들이 많이 오고 있다"면서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다른 곳은 몰라도) 이 투표소는 투표율이 오를 것 같다"는 것이다.
직장인 권순성(37)씨 역시 "예전에는 노인분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오늘은 젊은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고 말했다. 지난 대선에 이어서 이번이 두 번째 투표라는 대학생 김강윤(24)씨도 그중 하나였다. 아직 잠이 덜 깬 얼굴의 김씨는 "시험공부하러 가야 한다"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기표소를 나오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찍어야 할 사람이 많아서 정신이 없었다"는 반응이었다. 특히 교육감이나 교육의원 같은 경우에는 당이 없어서 "아무나 찍었다"는 의견도 더러 있었다.
두 자매와 함께 투표소를 찾은 한아무개씨(27)는 "후보도 너무 많고 공약도 차별화가 안 됐다"면서 "이틀 동안 공약집을 들여다보면서 공부를 했는데도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고 '투표소감'을 전했다. 그는 이어 "구청장같은 경우에도 우리 동네를 위해 어떤 일을 해줄지 알고 싶은데 국가가 어떻고 하는 식으로 너무 넒은 범위의 이야기를 하니까 후보보다는 당을 보고 뽑을 수밖에 없었다"고 쓴소리를 했다. 편안한 옷차림으로 투표소를 찾은 이들 세 자매는 "이제 밥 먹고 한 숨 더 자야겠다"며 집으로 향했다.
[서울-돈암동] "10년 만에 투표하러 나왔습니다"성북구 돈암 1동 투표소에서 마주친 최병완(55)씨는 등산복 차림이었다. 지방선거 날이자 휴일인 2일, 오전부터 채비하고 산에 가려던 참이었다. 10년 만에 투표를 한다는 최씨는 "현실이 불만족스러워서 투표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금 정부는 경제 살린다면서 제대로 한 건 하나도 없고, 인권문제도 과거 회귀적으로 가는 등 문제가 많다"며 "한명숙 후보가 당선되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오전 8시 30분경 집에서 막 나온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졸린 눈을 비비며 투표소에 들어선 40대 여성이 눈에 띄었다. 그는 옆에 있는 남편에게 "자는 사람 깨워서 투표하러 나오니까 만족해?"라며 투정을 부리기도 했다.
투표소 앞에는 30여 명이 줄을 서 있었다. 예년보다 투표 인원은 많아 보였다. 최씨는 "이렇게 투표줄이 긴 건 처음 봤다. 투표율이 높아서 변화가 일어났으면 좋겠다"며 밝게 웃었다. 사람이 밀리자 주민등록증을 받아 신원을 확인하는 선거관리원의 손은 쉴 새 없이 바쁘게 움직였다.
이른 아침 투표장을 찾은 이들은 원하는 후보가 당선되길 바라는 마음을 가득 품고 있었다. "한명숙 후보가 당선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투표했다"는 조상제(43)씨는 "오세훈 후보는 서민층과는 좀 떨어져 있는 듯해서 별로고, 한 후보는 청렴하고 그동안 걸어온 길이 정직해서 좋아한다"며 지지를 표했다.
20대부터 70대까지, 투표장을 찾은 이들의 연령대는 다양했다. 백발이 성성한 이아무개(69)씨는 "구의원, 시의원 등은 누가 누군지 몰라서 그냥 1번을 찍었다"며 "후보가 많아 정신이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시장 후보만은 정확히 알고 있었다. 이씨는 "시장후보? 오세훈, 한명숙 알지"라며 "시장 후보는 남자가 하는 게 낫다고 봐서 오세훈을 찍었다"고 말했다.
[서울-방배동] "투표 참여 문자 메시지 보내야겠다"2일 오전 9시 서초구 방배1동 제1투표소, 동사무소 맞은편 담벼락에는 6.2 지방선거에 출마한 후보들의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몇몇 사람들은 기표소로 들어가기 전 담벼락 앞에 서서 유심히 후보들의 이력들을 살펴봤다.
투표를 마치고 나온 시민들의 표정은 비교적 밝았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모녀는 "선거공보물이 너무 어지럽게 돼 있었지만 처음 해보는 1인 8표제가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대학생이라고 밝힌 딸은 "지난 대선 때도 투표했는데 전보단 투표율이 높을 것 같다"고 예측했다. 옆에 있던 어머니는 "그럼, 투표율은 높아야지"라며 맞장구쳤다.
자영업자인 서금혁(53)씨는 가게 문을 열기 위해 가족들보다 먼저 나와 투표했다. 한나라당 지지자라고 밝힌 서씨는 "미리 후보를 정해서 왔기 때문에 1인 8표제가 그리 문제되진 않았다"며 "여당 후보가 무리 없이 당선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투표를 마치고 가족과 함께 나들이를 갈 계획이라던 이아무개(40)씨는 "지난번 대선 땐 투표하지 않은 딸도 함께 나와 투표를 했는데 정작 기표소에 와보니 아직 그리 열기가 있는 것 같진 않다"며 우려를 표했다. 이씨는 "어제부터 주변에서 '투표하자'고 문자가 많이 오고 나도 대학 동기들에게 문자 메시지를 몇 통 보냈다"며 "직장 동료들한테 한 통씩 더 보내야겠다"고 덧붙였다.
[경기-안양시] "20대가 안 보여요""20대는 거의 안 보여요." 오전 9시 30분께 연현중학교에 마련된 경기 안양시 만안구 석수2동 제8투표소에서 만난 고등학생 김민정(18)양의 말이다. 김양은 "오전 8시부터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데, 투표하러 온 수백명 중에서 20대로 보이는 사람은 4명 뿐이었다"고 밝혔다.
실제 이날 오전 투표소에서는 어린 자녀의 손을 잡고 투표소를 찾은 젊은 부부나, 부부끼리 온 노년층의 모습만 눈에 많이 띄었다.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해 10여 분을 기다려야 할 정도로 유권자가 많이 몰렸지만, 대학생 등 20대로 보이는 이들을 찾기 힘들었다.
아내와 함께 투표소를 찾은 김동영(45)씨는 "주변에서 많이 투표를 안 하는 분위기다, 투표를 하라고 하면 욕먹는다"며 "나의 경우 4대강 사업이나 세종시 문제에 대한 불만이 많기 때문에 (일부러) 투표를 하러 나왔다"고 밝혔다.
한편 평온한 분위기 속에서 이뤄진 이날 투표는 '1인 8표제'의 복잡한 투표방식 탓에 혼란을 겪는 유권자들이 많았다. 교육감·교육의원 등을 뽑는 1차 투표를 한 후 투표장을 빠져나가려는 유권자가 많은 탓에, 투표사무원은 이들에게 4장의 투표용지를 내밀며 "한 번 더 투표를 하라"고 여러 차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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