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4월 18일(현지시각) 캠프 데이비드 방문중 골프카트에 함께 올라 손을 흔들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과 부시 미 대통령.
청와대
미국의 전쟁광들이 북한 핵문제와 관련해 한반도에서 울린 전쟁의 북소리가 지금도 쟁쟁하다. 1991년 11월, 당시 북한의 핵문제가 한창 시끄럽던 시절, 미국 하원에서 북한 핵문제 관련 청문회가 있었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시절 국방부 국제정책담당 차관보를 지낸 리처드 펄은 이날 청문회에서 노골적으로 무력 공격을 주장했다. '어둠의 왕자'라는 별명을 가진 그는 1차 걸프전쟁 때도 개전 초기부터 대규모 지상군을 투입해 바그다드까지 질풍노도처럼 밀고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한 초강경 매파였다.
"경제·외교적 제재조처는 시간만 끌 뿐 근본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는다. 무력사용이 유일하게 효과적인 방법이다."그런데 이날 청문회에서 리처드 펄이 이처럼 직설적으로 대북 무력공격을 주장한데 반해, 군사 공격을 정면에서 반대한 인물은 뜻밖에도 군인 출신인 존 위컴 전 주한 미군사령관이었다.
"(북한 핵시설에 대한) 군사 공격은 현재 (한반도에 배치된) 대규모 군사력으로 보아 틀림없이 전쟁을 일으키게 될 것이다. 그리고 (핵시설 등에 대한) 정확한 정보의 결여와 암반이 많은 북한 지형의 특성상 지하 시설에 대해 기습 공격을 해도 성공을 거두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재래식 무기에 의한 공격이 우발적으로 북한의 핵분열 물질을 폭발시킬 경우 이로 인한 방사능 낙진이 남한과 일본으로 흩어질 수 있다."미국 내에서는 이처럼 북한에 대한 군사적 공격 이야기가 끊임없이 나왔다. 푸에블로호 사건 때도 그랬고, 북한 핵문제가 위기로 치달을 때마다 쏟아져 나왔다. 1968년 미국의 정보함인 푸에블로호가 납북되었을 때 당시 미국은 대북 무력보복 조처를 심각하게 고민했다. 도날드 그레그 전 주한 미국대사는 1994년 7월 미국 워싱턴 주미 한국 대사관이 마련한 모임에서 연설을 했는데, 푸에블로호 사건과 관련하여 이런 회고를 했다.
"푸에블로호 납치 사건이 터졌을 때 나는 일본에서 미국 중앙정보국 요원으로 일했다. 당시 나는 북한에 대해 취할 수 있는 보복조처를 찾기 위해 무진장 노력한 중앙정보국 요원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그 때 우리가 내린 결론은 푸에블로호 선원들이 살해되지 않으면서 제2의 한국 전쟁이 터지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보복조처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그레그 대사는 25년 동안 미국 CIA에서 일하면서 대부분 시간을 아시아 문제 전담으로 보냈다. 1973년부터 3년간은 CIA 한국 지부장을 지냈다. 79년 카터 행정부 때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CIA 파견 보좌관을 지냈고, 1980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취임 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보좌관으로 계속 남아 있었다. 1982년 중앙정보국을 사임한 뒤 조지 부시 당시 부통령의 국가안보담당 보좌관이 되었다.
이런 배경을 가진 그레그는 90년대 초중반 북한 핵문제가 첨예하게 떠올랐을 때, 군사력을 통한 해결에 한사코 반대하고 화해·협력정책의 전도사처럼 활동했다. 그 이유는 푸에블로호 사건 때 경험한 대북 대응책의 현실과 한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그는 기회 있을 때마다 고백했다. 그 현실과 한계는 바로 제2의 한국전쟁 가능성이었고, 그렇게 될 경우 한반도에 어떤 끔찍한 일이 벌어질지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민간인 출신은 무력사용 옹호하고, 군 출신은 반대하고북한 정권이 예뻐서가 아니라, 이런 '현실적 한계' 때문에 화해·협력정책을 통해 한반도의 위기를 관리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한 이들이 미국 행정부 내에도 적지 않았다. 강경 매파들이 자리잡고 있는 국방부와 CIA 쪽은 달랐지만 국무부 인사들은 다수가 비둘기파였다. 그레그 대사뿐 아니라 90년대 초, 북미간 대화가 거의 없던 시절 국무부 동아시아 태평양 담당 차관보를 지낸 리차드 솔로몬, 94년 북미 제네바 기본합의를 이끌어 낸 로버트 갈루치 미국 핵협상 대표 등이 대표적 인물들이다.
1994년 북한과의 핵협상을 주도했던 로버트 갈루치 대사는 북미 기본합의서가 최선은 아니지만 북한의 핵개발을 동결시킨 차선책은 분명하다며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⑴북한이 핵을 개발하건 말건 그냥 내버려둔다 ⑵군사력으로 핵시설을 파괴해 버린다 ⑶외교적 협상을 통해 문제를 푼다 등 세 가지 접근 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첫째와 둘째 방법은 받아들일 수 없다. 특히 군사적 해결은 한반도에 전면전을 불러일으킬 위험이 매우 높기 때문에 결코 선택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 따라서 북한과 협상을 벌이지 않을 수 없으며, 이 경우 차선책으로 외교적 협상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한반도 전쟁 발생하면 남쪽 1백만 사망, 경제피해 1조 달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