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밤 서해 백령도 서남방 1.8㎞ 해상에서 침몰한 1200t급 초계함 천안함의 선수 부분이 수면위로 보이고 있는 가운데 해경 함선이 주변을 지나고 있다. (사진=옹진군청 제공)
뉴시스
지난 '증언'을 통해 "우리 공동체에 심대한 영향을 주는 퇴영적 행태와 모순이 누적되어 분출되는" 재앙의 징후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런 예로 권력에 도취·중독된 권력 주변 인사들의 오만한 발언과 행태를 들면서 '큰집 조인트' 발언의 주인공 김우룡 전 방문진 이사장과, 한나라당 서울시의회 의원에 출마하는 자신의 딸에게는 '잘 해보라'면서도, 여성 취업이 저출산의 원인이라며 현모양처가 여성의 길이라고 외친 '한 입 두 말'의 MB 멘토 최시중 방통위원장의 경우를 들었다. 그리고 '신뢰'와는 거리가 먼 사례로 BBK와 관련된 이명박 대통령 후보시절의 동영상 발언을 되새겨보기도 했다.
'신뢰의 붕괴', 천안함 참사 이후
그 뒤 초계함 천안함의 참사가 일어났다. 대형 사고가 대부분 그렇듯, 천안함 참사 역시 지금 우리 시대의 온갖 문제와 모순이 응집되어 나타났다. 그 한 가운데는 바로 정부와 군 당국의 발표나 설명을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불신'이 자리잡고 있다. 참사 이후 나온 각종 발언과 수시로 바뀌는 설명은 불신의 벽을 더욱 더 깊게 하였다.
천안함 참사 이후 나온 '신뢰의 붕괴'를 한번 보자. 수시로 말이 바뀌고, 설명이 바뀌고, 대통령과 국방장관의 말이 엇갈리고, '북한 개입설'과 관련하여 온갖 추측이 난무하고, 그러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불신과 의혹, 혼란이 더 가중되어 왔다.
천안함 침몰 원인이 배에 구멍이 났다는 '파공'에서, '선체 절단'으로 바뀌었고, 사고 발생 시각은 오후 9시 45분→ 9시 25분→ 9시 30분→ 9시 22분 등 시시각각으로 바뀌었다. 열상관측장비(TOD) 촬영은 언제부터 시작했는지, 40분 정도의 촬영 분량을 왜 1분 20초짜리 편집본으로 처음 발표했는지, 그리고 없다던 촬영분이 7일 발표에서 다시 또 나온 이유에 대해 국방부의 설명은 오락가락했다.
천안함이 사고 해역으로 항해한 이유에 대해서도 "그동안에도 15번 이상 초계함이 오간 작전지역"(김태영 국방장관), "북한에 대비해 지형적 이점을 이용하기 위해"(국방부), "풍랑이 세서 피하려고"(국방장관). "피항과 경계작전이 동시에 이뤄진 것"(국방부) 등 몇 번이나 말이 바뀌었다.
속초함의 76mm 함포사격은 "구조작업을 위한 조명탄과 새떼로 추정되는 물체를 향한 경고 사격", "고속 북상하는 미확인 물체를 적 함정으로 판단한 격파 사격", "새떼로 추정되는 물체 공격"으로 오락가락했다. 함수 부분 부표 설치와 관련해서도 처음에는 "설치했으나 강한 해류에 끊어졌다"고 설명했다가 많은 의혹이 제기되자 "뱃머리에 접근할 수가 없어 해경에 부이 연결을 부탁했다"고 바뀌었다.
'어선이 발견한 함미'가 뜻하는 것해저에 있는 천안함 함미를 누가 처음 발견했는가 하는 문제는 군의 위기 대응 능력, 군의 신뢰성 등 이번 참사 이후의 사태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이었다. 군은 처음에는 음파탐지기를 갖고 있는 해군의 기뢰탐지함인 옹진함이 발견했다고 주장했는데, 민간 어선 해덕호 선장의 이야기가 알려지자 군은 말을 바꾸었다. "대한민국 바다는 어부들이 지키느냐. 어떻게 구조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군이 (가장 중요한 이틀 동안) 함미도 찾지 못했느냐"는 실종자 가족의 외침은 처절했다.
'북한 관련설'에 대해서는 국방장관의 설명이 하도 왔다 갔다 해서 도대체 군 당국이 파악하고 있는 북한군 동향이 무엇인지조차 실체가 잡히지 않는다. 군사정보의 독점적 우월로 인해 한국이 절대적으로 예속되어 있는 미국조차 "구체적 증거가 없다" "북한군 동향에 특이 상황이 없다"며 잇따라 부인하는데도 북한 관련설은 온갖 형태로 계속 등장했다.
이런 가운데 "어뢰의 가능성이 더 실질적"이라는 김태영 국방장관 발언이 청와대 VIP(대통령 지칭)에 의해 브레이크 걸리는 쪽지가 전달됐다. 이 쪽지가 공개되어 대통령이 국방장관의 발언을 '마사지'한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청와대에서는 국방비서관의 말이 잘못 전달된 것이라고 발뺌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청와대 대변인이 대통령 발언을 '마사지'한 일이 불과 얼마 전이었는데, 이번에는 청와대 국방비서관이 대통령을 '참칭'했다는 이야기다.
천안함 참사 이후 각종 현안들에 대해 이처럼 수시로 바뀌는 설명과 발언은 정부와 군 당국에 대한 신뢰를 바닥으로 떨어트려 놓았다. 여기에다 "해군의 초동 대응이 잘 됐다고 생각한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은, 초기 대응이 얼마나 지리멸렬했는지 낱낱이 밝혀지면서 대통령의 상황인식 능력과 그의 '말'에 대한 신뢰를 땅바닥으로 추락시켰다.
대통령의 세종시 발언, 명백한 '신뢰 파탄'의 증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