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령도 부근에서 침몰한 해군 초계함 '천안함' 실종자 가족들이 모여 있는 경기도 평택 해군 2함대에 지난달 28일 오후 김태영 국방부장관이 방문해서 면담을 가지는 도중 실종자 가족들이 구조작업이 늦어지는 것에 대해 거세게 항의하고 있다.
권우성
"요즘에 만나는 사람들마다 '군 의문사위 다시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더라. (유왕선 전 군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관)""(사고발생) 시간도 오락가락하고. 옛날 우리 아들 죽었을 때와 똑같다. (허영춘 의문사 유가족대책위원장, 고 허원근 일병 아버지)"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이하 국방부 과거사위)나 군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이하 군 의문사위) 등에서 활동했던 민간 전문가나 군 의문사 유가족들은 하나같이 "천안함 침몰 사고에 대한 군 당국의 태도가 과거와 똑같다"고 지적했다.
또한 이들은 "과거사 청산 등 개혁 작업이 중단되면서 군이 옛날로 돌아갔다"면서 정부와 군 당국을 함께 비난했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활동한 바 있는 이기욱 변호사는 "최후 통수권자와 군 수뇌부의 생각이 180도 바뀌었다"고 지적했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한국군 자체에 '피로파괴'가 일어나고 있다"면서 "이번 사고를 계기로 군에 대한 문민 통제를 검토하자"고 주장했다.
"한국군은 지금 피로파괴 상태"국방부는 6일 뒤늦게 천안함 생존 장병의 공개 진술과 사고 발생시간을 발표하기로 했다. 그러나 여전히 사고 관련 교신일지·상황일지·유무선 통신일지를 모두 보여주지는 않고 있다. 국방부가 내세운 이유는 또 '국가 안보'다. 사고경위의 결정적 단서가 될 천안함 절단면조차 공개될지 여부가 불투명하다.
군 의문사위·국방부 과거사위 두 곳에서 모두 위원장을 역임했던 이해동 목사는 "그동안 실종자 가족들이 왜 생존자를 만날 수 없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자꾸 사실을 감추려하다 보니 다시 변명하느라 말을 바꾸고 있다"면서 "민주주의가 퇴행하고 군 개혁 흐름이 끊긴 현재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이번 사건에 대한 정부와 군 당국의 태도는 참여정부 시절 발생한 2005년 연천 총기난사 사고와 대조적이다. 당시 군은 조기에 생존자 진술은 물론 근무일지를 공개하면서 적극적으로 의혹 해소에 나섰다.
이기욱 변호사 역시 "아무리 예민한 문제라고 해도 절단면을 완전히 미공개하거나 인양 사진을 못 찍게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왜 해군 전문가나 장성들이 사고에 대해 브리핑하지 않느냐"고 따져물었다. 사건을 보다 정확하게 알고 있을 책임자들이 정확하게 사실을 밝혀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과거사위가 활동하던 때와 비교해보면 군이 완전히 바뀌었다"면서 "김태영 국방부 장관이 북쪽(북한) 이야기를 하는 것 보면 수뇌부 생각이 예전과 확실히 다른 것"이라고 분석했다. 군이 과거사위원회를 꾸린 것은 사회적 여론에 따른 것이었고, 정권이 바뀐 다음엔 투명한 정보 공개를 강제할 수 없게 됐다는 분석이다.
그러면서 이기욱 변호사는 국회 국방위·정보위의 역할을 강조했다. 국방부 주장대로 국가 안보를 위해 기밀을 유지해야 한다면, 국회에서 매일 관련 내용을 보고받은 뒤 필요한 부분만이라도 공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고 이후 국회에서 열린 관련 회의에서는 '뉴스'를 찾기 어렵다. 의원들도 이미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중심으로 질의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이 변호사는 "군 전문가 의원이 한명도 없고 (이를 극복하려는) 노력도 부족하다"고 말했다. 현직 의원들의 이름을 거론하면서 "그런 의원들이 뭘 아느냐"고도 했다. 또한 북한 잠수함의 어뢰 공격 가능성을 주장한 김학송 국방위원장에 대해서는 "넋빠진 것이다, 사태의 본질을 못 짚었다"고 강하게 비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