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질문자로 나선 한나라당 친박계 유정복 의원은 정 총리의 책 <가슴으로 생각하라>의 내용을 인용하면서 그의 말바꾸기를 꼬집었다. 유 의원은 책 내용 중 "손해를 보더라도 지켜야하는 것이 약속이다…(중략) 사람과 장소에 따라 다른 말을 하는 것은 정치적 융통성이 아니라 '연기'처럼 느껴졌다"를 인용한 후 "이 책 직접 쓴 거 맞느냐, 지금 연기하는 것이냐"고 포문을 열었다.
이에 다소 당황한 기색을 보이던 정 총리는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것이냐"며 불쾌감을 그대로 드러냈다. 그러면서 "약속은 중요하지만 국가 대사에 관한 일은 잘못됐다고 판단되면 고치는 게 국민을 위해 중요하다"고 해명했다.
그래도 공세는 끝나지 않았다.
유정복 의원 "고려대, 카이스트 MOU 체결, 대기업 원형지 공급, 교육과학도시 홍보하고 있는데 이것들이 원안에 있었나, 없었나?"
정운찬 총리 "원안에는 없다."
유정복 의원 "어이가 없다. (책자를 들어보이며) 이게 세종시 수정론이 나오기 전 정부의 원안 홍보책자다. 여기에 다 들어있다. 원안과 수정안이 다른 점은 행정부처 이전을 빼고 사업 완료시점을 2030년에서 2020년으로 앞당긴 것 뿐이다."
친박계 이학재 한나라당 의원도 정 총리를 매섭게 몰아붙였다. 이 의원은 과천의 사례를 설명하면서 "과천의 인구가 왜 7만인 줄 아느냐"고 물었다. 정 총리는 머뭇거리면서 "행정부처 외에 아파트 밖에 없기 때문"이라며 세종시에도 행정부처가 가서는 발전하기 어렵다는 취지의 답변을 내놨다.
그러자 이 의원은 "원래 과천의 목표 인구가 5만이라 그렇다. 주변이 모두 그린벨트고 2차 산업용지가 없어 더 늘어나면 난개발이 된다"며 "세종시와 과천은 다른데 총리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잘못된 정보로 호도하고 있다"고 따졌다.
여당과 총리의 이례적인 날선 공방이 이어지자 이춘석 민주당 의원은 "보통 야당의원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여당이 옹호하는데 오늘은 여당 의원들의 목소리가 더 크다"며 "총리가 말이 안되는 소리를 하니까 그러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늘어난 '맷집' 자랑한 정 총리... 의원들 발언 정면을 맞받아쳐
하지만 이날 정 총리도 평소와는 다르게 의원들의 발언을 정면으로 맞받아치는 등 늘어난 '맷집'을 자랑했다.
세종시 수정안에 대한 비판에 "세종시는 정치인들이 표를 얻기 위해 만든 아이이디어"라거나 "정치집단의 보스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정치인들의 말이) 달라져 안타깝다"고 박근혜 전 대표와 친박계 의원들을 겨냥 맹비난을 퍼부었다.
또 친이계 임동규 한나라당 의원이 정 총리가 맘껏 발언하도록 멍석을 깔아주자 "유권자로부터 표를 얻겠다는 정치적 복선을 깔고 추진한 것을 국민과 약속이라고 하는 것은 책임있는 자세가 아니다"라고 거듭 박 전 대표를 비판했다.
이상민 자유선진당 의원이 "총리가 충청도에 갈 때마다 경찰 수천명이 투입된다, 계란세례도 받았는데 부끄럽지 않느냐"고 따지자 정 총리는 "뭐가 부끄럽나, 지역 정치인들이 비합리적으로 주민들의 여론을 호도하지 않았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 총리는 또 행정부처 이전에 따른 행정비효율의 계량화된 수치를 내놓으라는 요구에는 "총리가 매일 연필로 계산하고 있어야 하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 총리는 여전히 '퀴즈형' 단답식 질문에는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다. 정 총리는 지난해 정기국회 때 '731 부대'를 항일독립군이라고 답했다 큰 창피를 당한 바 있다.
앞서 유정복 의원이 "정부는 몇 개의 부처청이 있느냐"고 묻자 정 총리는 답변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다 "이 자리가 그런 개수를 답변하는 장소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제발 본질을 가지고 이야기했으면 좋겠다"고 응수했다.
하지만 양승조 민주당 의원은 "총리가 정부부처 수를 모른다는 것은 자기 식구 수를 모르는 것과 같다"고 핀잔을 줬다. 그러자 정 총리는 "국민이 알고 싶어하는 것을 물어야지 퀴즈하듯 물어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거듭 불만을 나타냈다.
야 "궤변, 핑계, 변명 막장드라마 수준"... 여 "금도 넘어선 인신공격적 비방"
야당들은 정 총리의 답변 태도에 대해 비판을 가했다.
우상호 민주당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궤변과 핑계, 변명으로 일관하면서 세종시 원안을 찬성하는 사람들을 비하하고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국무총리답지 못한 태도"라고 비판했다.
김창수 자유선진당 대변인도 "정 총리가 세종시 원안을 주장하는 의원들을 계파 보스만 따르는 사람들로 비하했다"며 "정 총리의 발언이 도를 넘어 '막장 드라마' 수준에 이르렀다"고 평가했다.
반면 조해진 한나라당 대변인은 "야당 의원들이 대통령에 대한 금도를 넘어선 인신공격적 비방을 했고 총리에 대해서도 개인적으로 모욕을 주는 발언을 거침없이 했다"고 두둔했다.
대정부 질문 첫날, 예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맷집'을 선보인 정 총리와 한나라당 친박계·야당 의원들의 공방은 5일 외교통일분야 대정부 질문으로 이어진다.
[4신 : 4일 오후 7시 6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