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8년 5월 14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언론회관 국제회의장에서 국민행동본부, 뉴라이트전국연합, KBS·MBC정상화운동본부 주최로 열린 '광우병 괴담 선동센터 KBS·MBC 규탄 및 감사청구 기자회견'에서 서정갑 국민행봉본부 본부장, 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 등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권우성
전윤철 감사원장과는 KBS 특별감사를 둘러싸고 묘한 인연이 있었다. 감사원은 지난해 말고도 2003년과 2004년에 걸쳐 KBS에 대한 집중적인 특별감사를 한 적이 있었다. 당시 감사원장도 전윤철씨였다.
2003년 11월, 국회에서 KBS 특별감사 청구를 했다. 당시 다수당이던 한나라당은 'KBS 사장 정연주'의 존재를 눈에 가시처럼 여겼다(그 시절의 이야기는 나중에 자세히 증언할 터이지만, 이런 일도 있었다. 2003년 가을 국회 문광위 국정감사 때에는 이원창 한나라당 의원이 '정연주 사장 간첩 혐의'를 제기했고, <동아일보>는 다음 날, 1면 머리기사로 이를 전했다).
감사원은 2003년 11월 26일부터 엿새 동안 예비감사를 했고, 12월 8일부터 본감사를 시작하여 이듬해 4월 12일까지 본감사를 실시했다. 그리고 본감사 종료 후 39일 뒤인 5월 21일, 감사원 보고서를 채택, 발표했다. 예비 감사 시작 후 거의 6개월 만에 특별감사가 마무리되었다.
이에 비해 지난해 감사원 특별감사는 전광석화, 일사천리의 속도전이었다. 전윤철 감사원장이 사퇴하자 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뉴라이트 쪽 시민단체가 KBS내 간부노조의 주장이 고스란히 반영된 자료를 가지고 국민감사 청구를 했으며, 엿새 뒤 국민감사청구심사위원회가 열려 특별감사 실시 결정을 내린 것이다.
그리고 나서 닷새 뒤인 5월 26일부터 6월 5일까지 예비감사가 있었고, 엿새 뒤인 6월 11일부터 한 달 동안 본감사가 있었다. 그리고 8월 5일 최종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나의 해임을 요구했다. 4년 전의 특별감사가 예비감사 시작 후 6개월 만에 마무리된데 비해, 지난해 특감은 예비감사 시작 후 2개월 9일 만에 초고속으로 끝났다. 그렇게 특감을 끝낸 뒤 8월 5일 감사원은 '감사 결과 처분 요구서'를 발표하고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 사장 해임 요구를 했다. 영혼없는 무리들에 의한 정치 감사, 표적 감사가 아니라고 우길 수 있을지...
8월 5일 발표한 '감사 결과 처분요구서' 1쪽에 이런 구절이 있다.
2008.5.15 뉴라이트학부모연합 대표 000 외 381명이 KBS의 경영 부실, 사장의 인사 전횡 등의 사유를 들어... 감사원에 국민감사 청구를 하였다. 이에 2008.5.21 개최된 국민감사 청구심사위원회에서는 누적 적자의 증가 등 부실 경영의 원인에 대한 분석과 인사권 남용 등 경영실태 전반에 대한 감사 필요성을 인정하였다.'누적 적자'와 '인사권 남용'이라는 거짓과 왜곡이 구절을 보면, 감사원은 누적 적자 등 부실 경영과 인사권 남용 등 두 가지 구체적 사례를 들면서 특별감사를 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실제로 KBS 특별감사를 결정한 국민감사 청구심사위원회의 회의록을 보면 두 가지에 대한 논란이 집중적으로 나온다. 그런데 이 두 가지 핵심 사안은 모두 거짓과 왜곡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1500억 원 누적 적자'의 거짓은 지난 주에 밝힌 바 있으니, 이 자리에서 반복하지 않겠다.
그리고 두 번째 예를 든 '인사권 남용'이라는 것도 정말 어이가 없는 지적이다. 인사권 남용의 예로 든 특별 승격 사례들은 2003년의 일인데다 당시 사규대로 집행되었고, 더구나 2004년 8월 팀제 도입으로 문제의 소지가 근원적으로 사라져 버린 사안이었다.
2003년 4월 말, KBS에 취임하고 보니, KBS 조직이 전형적인 관료주의 조직체제로 되어 있었다. 간부가 되려면 일정 직급 이상이 되어야 가능했다. 그러니까 직위와 직급이 분리되어 있지 않아, 일정 직급에 이르지 못하면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책임 있는 직위, 직책을 맡을 수 없게 되어 있었다. 예외로 가능하게 한 것이 특별승격 제도라는 것이었다. 어떤 직위, 직책에 발탁하기 위해서 특별승격을 하도록 사규에서 정해 놓았다. 그래서 그 사규에 따라 특별 승격을 실시했고, 그리고 직위, 직책을 부여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제도 자체가 전형적인 관료주의 체제였으며, 그래서 직위와 직급을 분리시키고, 능력 있는 사원의 발탁을 가능하게 한 개혁이 바로 2004년 8월에 단행한 팀제 도입이었다. 팀제 아래서는 직위와 직급이 분리되어, 2직급(차장급) 이상이면 어떤 직책도 가능하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팀제 도입 이후에는 아예 특별승격 자체가 필요 없게 되었고, 능력 있는 사원들의 발탁 인사가 가능했다. 실제로 팀제 도입한 이후, 2직급의 직급을 가진 사원이 팀장으로 발탁된 경우도 적지 않았다. 팀제 이전이면 불가능한 인사였다.
팀제는 대부분 일반 기업체에서 도입하여 시행하고 있는 제도다. 정부기관 중에 관료주의극복을 위해 팀제를 도입한 곳도 여럿 된다. 나는 지금도 KBS에서 도입한 대팀제가 관료주의 조직을 극복하고, 상명하복의 수직적 조직문화를 자율성과 참여가 크게 확대되는 수평적 조직문화로 바꾸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내가 해임된 후 팀제의 골간도 다 허물어지고 지금은 껍데기만 남고, 다시 옛날처럼 관리하기 좋은 상명하복의 수직적 관료주의 체제로 환원되어버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런 개혁의 성과는 무시한 채, 그 개혁 이전의 관료주의 제도 아래서 발탁 인사를 위해 사규에 정해진 특별 승격을 한 것을 문제 삼아 인사권 남용이라고 하니, 참으로 옹색하고 해괴한 사고 방식이었다.
국민감사 청구심사위원회의 황당한 회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