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KBS
지난주 얘기했다시피, 감사원 감사팀은 KBS 일반에 대한 감사를 담당하는 팀(사회복지감사국)과 특히 나의 비리를 집중적으로 찾는 팀(특별조사본부. 그들 스스로 줄여서 '특조'라 불렀음)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사실인지 알 수 없으나 1주일이면 정연주 손들게 할 수 있다는 얘기도 들렸다. 당시 공기업 사장이 사퇴를 요구받고 좀 버티다가 감사원 특조팀이 들어가 이틀 정도만 뒤져도 이를 버티지 못하고 사표를 냈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나돌았다.
그런데 특조팀이 내 법인 카드와 업무 추진비를 들여다 본 후 김이 샜다는 후문이 들렸다. 업무 추진비의 실제 집행액이 월 한도액의 30-40% 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특조팀은 다른 카드도 여럿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불멸의 이순신' 세트장 건설과 관련된 것이다. 이 건은 당초 감사원 특조팀에 들어간 제보가 워낙 상세한데다 혹하게 잘 만들어져 있어서, 이것만 가지고도 정연주를 날릴 수 있을 꺼라고 생각할 정도였다는 것이다.
그 제보의 내용은 이런 것이었다. '불멸의 이순신' 세트장은 당초 경남 통영, 전남 여수, 완도 등이 고려 대상이었는데, 정연주 사장 부인의 고향이 전북 부안 쪽이라 그 쪽으로 결정이 났고, 그런 과정에 사장 부인의 부동산 투기 의혹이 있다는 것이었다. 이와 관련하여 상당히 자세한 정보가 구체적으로 제시되었다는 것이다.
이 문제 때문에 '불멸의 이순신'을 연출한 담당 PD를 비롯하여 드라마팀이 참 고생을 많이 했다. 수시로 감사팀에 불려가서 조사를 집중적으로 받고 있다는 보고가 계속 들어왔다. 그 조사 대상에는 부안으로 세트장이 결정되는 과정에 사장이 어느 정도 깊이 관여했는지도 포함되어 있었다.
대하 드라마의 세트장을 결정하는 데는 여러 요인이 고려 대상이지만, 핵심은 드라마 연출자의 마음이다. 드라마 연출자는 어느 곳이 세트장으로 가장 적합한지를 찾기 위해 전국을 누비고 다닌다. 그래서 몇 군데 후보지를 정해 놓고, 어느 곳이 드라마에 가장 좋은지를 검토하기 마련이다. 그렇게 어느 후보지가 대략 정해지면, 세트장 건설비, 미술비 등의 부담을 지방자치단체가 어느 정도 할 수 있는지를 놓고 지역 지방자치 단체와 논의한다. 지자체는 드라마가 성공하면 관광수입 등을 기대할 수 있기에 드라마 세트장 유치에 적극적이다.
'불멸의 이순신' 경우, 연출자는 여러 군데를 후보지로 보았다고 했다. 전남 완도, 여수, 경남 통영, 전북 부안 등의 후보지를 놓고 실제 답사하면서 장단점을 헤아렸다는 것이다. 양식장이 많은 곳, 영상미가 잘 나오지 않는 곳, 서울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곳 등을 제외하다 보니, 전북 부안이 이들 후보지 가운데 가장 좋다는 결론이 내려진 모양이었다. 세트장이 들어선 부안의 궁항 주변은 전신주 등의 방해물도 없고, 앞 바다에 점점이 작은 섬들까지 흩어져 있는데다, 가까운 곳에 변산 내소사도 있고, 또 KBS의 또 다른 세트장(영화 '왕의 남자' 촬영지)이 있어서, 여러 면에서 조건이 좋았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후보지로 정해진 다음, 부안군과 협찬을 논의하게 되었고, 협찬 논의도 순조롭게 진행되어 최종 후보지로 낙찰되었다. 사장인 나에게는 별도로 세밀한 내용이 보고되지 않고, 대체적인 흐름과 큰 줄기에 대한 이야기가 임원회의에서 보고되었다.
조직의 자율성 확대를 위해 이미 많은 권한을 아래로 내려 보냈는데다, 드라마 세트장 선정이야 말로 전문가인 드라마 연출자가 결정해야 하는 것이니, 사장이 개입할 여지가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감사원은 그렇게 보지 않았다. 우연하게도 나의 아내 고향이 전북 부안이라는 이유로 그들은 현미경을 들이댔다. 그리고 감사원 특별감사가 있기 훨씬 전, 나에 대해 참으로 적대적이었던 강00 감사 시절, KBS 감사실에서 이미 부안 세트장 건을 조사한 적이 있었다.
특조팀은 부안 세트장 일대 토지 매매를 거의 조사한 모양이었다. 나나 나의 아내의 흔적은 보이지 않고, 대신 KBS 직원 두 명의 땅 소유 사실이 드러난 모양이었다. 한 명은 1백 평을, 또 다른 한 명은 7백 평을 사들였는데, 드라마 세트장이 들어설 즈음에 구입한 모양이었다. 그런데 1백 평은 규모가 너무 작고, 7백 평 경우는 세트장이 들어설 것으로 보고 투자하기는 했지만, 지역을 잘못 짚어 세트장보다 좀 떨어진 곳에 땅을 매입한 탓인지, 감사 당시까지는 되레 손해를 본 것으로 드러난 모양이었다. 부안 세트장 건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한 편의 서글픈, 그러나 결코 잊어서는 안 될 블랙 코미디였다.
* 다음 주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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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동아일보 기자, 한겨레 워싱턴 특파원, 논설주간, kbs 사장.
기록으로 역사에 증언하려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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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이순신' 부안 세트장까지 파헤친 감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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