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한 장면.
(주)강제규 필름
전쟁 전 10만 정도였던 군대는 전쟁이 끝날 무렵 65만 대군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이렇게 끌어만갔지, 제대군인들의 삶을 지원하기 위한 노력은 없었다. 한국전쟁이 끝난 후 살길이 막막한 제대군인에게 직장을 보장할 것을 요구하는 글들이 언론에 이어졌고, 선거 때마다 제대군인에 대한 대책이 주요한 공약으로 대두되었지만 대부분 지켜지지 않았다. 이것이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직후 우리 사회가 경험한 징병제의 또 다른 모습이다.
군가산점제도는 이러한 배경 위에서 등장한다. 박정희 군사정권은 권력을 접수한 직후인 1961년 '군사원호대상자고용법'를 제정하면서 상이군인을 의무 고용 하도록 한다. 호의적인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서 제대군인에 대한 보상요구를 제도화한 것이다. 이후 이 법률은 특정 기관의 채용에 있어서 가산점을 주는 방식으로 확대된다.
그렇다면 이것은 실질적인 보상이 되었을까? 전혀 그렇지 못했다. 보상을 받을 기회가 매우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돌아갈 뿐이었다. 또한 이 제도는 사실상 군미필자들에게 불이익을 주는 것으로 군복무자들이 상대적 이익을 보게 하는 구조였다. 국가가 어떠한 재정지출이나 노력도 하지 않은 채 다른 집단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거짓 '보상'이었을 뿐이다.
이렇게 보상이 허술했던 반면, 기피자에 대한 단속은 대대적으로 이루어졌다.
박정희 정권이 등장하자마자 당시 40%에 육박했던 병역기피자들을 일소하겠다며 기피자 자진신고 기간을 설정하고, 각 직장마다 병역필 확인서를 비치하도록 했다. 불시에 사업장을 검문해서 병역필 확인서가 없는 직원들을 해고시키도록 했다. 지금은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병역필'의 입사조건은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위헌소지 피하려고 줄이고 줄인 가산점제가 우대방안?이처럼 한국사회에서 징병제는 '진압'만이 있었을 뿐 제대로된 '보상'이 없었다. 병역기피의 심리는 당연했다. 그러나 몽둥이를 든 국가 앞에서 "군대 가고 싶어서 가는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고 그래"라는 울분은 엉뚱한 방향으로 향했다. 유승준을 입국 금지 시켜도, 감옥에 있는 병역거부자들에게 욕을 퍼부어도 문제의 본질은 해결되지 못했다.
1999년 군가산점제도가 위헌판결이 났을 때 수많은 예비역들은 여성단체들에게 분노를 쏟아냈지만, 그때 "이제 가산점제와 같은 허울뿐인 보상 말고 실질적인 대책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다면 어땠을까? 위헌판결이 난 지 10년이나 지난 후에, 위헌 소지가 있을까봐 줄이고 줄여 누더기가 된 '군가산점제'를 다시 군필자 우대방안으로 내놓는 병무청의 뻔뻔한 모습은 보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번 국정감사에서 병무청장이 밝힌 병역기피에 대한 대책 역시 '진압' 일변도다. 병역기피 혐의가 밝혀져서 입대할 경우 1.5배에서 2배의 복무를 시키겠단다. 그러나 수십 년간 이어진 '진압'을 강화하는 것만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병무청 역시 이를 인정하기에 "군필자들에게 실질적인 혜택을 부여하기 위해 우대방안"을 함께 준비한 것이다. 그런데 이 우대방안이라고 나온 것이 겨우 군가산점제도와 도로통행료, 국립공원 입장료, 철도료 등 공공시설 이용료 할인이다. 너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