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속 깊은곳에서 다이버가 숨을 쉰후 공기를 내뱉고 있다.
심명남
사랑하는 아내 위해 전복을...이렇게 고향에서 행복한 하루를 보내고 날이 저물자 운명의 시간이 다가왔다. 후배는 아이가 생기지 않는 아내를 몸보신 시킨다고 해삼과 전복을 따기 위해 마을 앞 방파제로 다이빙을 떠난 후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방파제 앞 차에서 아내를 기다리게 해놓고 밖에는 그물이 쳐져 있으니 안쪽으로 간다는 말을 남기고 다이빙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바닷속에 들어간 지 30분쯤 지나서 비명을 지르는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방향을 잘못 잡았는지 그물이 쳐진 바깥쪽으로 나갔던 것이다. 또한 다이빙을 하다 그물에 장비가 걸렸는지 당황한 후배는 죽을 힘을 다해 올라왔고 살려달라는 비명을 지르고 다시 가라 않기를 반복했다. 놀란 그의 처는 마을 사람들에게 즉시 구조를 요청했고 나이든 마을 어른들이 배를 타고 현장에 갔을 때는 이미 기력을 잃은 뒤였고 해경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졌다.
이후 다이빙을 함께 다녔던 동료 다이버들은 후배를 잃은 공허함과 엄청난 상실감을 주체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가 떠나기 전 얼굴이라도 한 번 보는 것이 후배에 대한 마지막 예의일 것 같아 영안실에서 얼굴을 확인했다.
삶과 죽음은 무엇이던가? 그물에 걸려 사투를 벌이다 죽음을 맞이했을 후배의 모습은 우려와는 달리 너무도 편안하게 눈을 감고 있었다. 마치 삶과 죽음이 눈을 뜨고 있는 것과 눈을 감고 있는 것의 차이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모두들 후배의 영면을 빌어 주었다. 바다에서 서로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한 모금의 공기를 나눠 목숨을 지켜주자고 다짐했던 다이버들이 아니었던가? 너무도 맘씨가 착한 후배의 죽음으로 나는 3일내내 장례식장을 떠나지 않았고 장례식 내내 많은 눈물을 흘렸다. 철들고 이렇게 슬퍼해 보기는 처음이었을 듯싶다.
이후 출상하는 날 회사측의 배려로 고인을 실은 영구차는 회사에 들러 노제를 치렀다. 그 동안 일했던 정든 일터에 들러 동료들과 마지막 이별을 고하기 위해서다. 추모사가 이어 지는 가운데 많은 동료들은 후배 C.S와 가졌던 추억들이 오버랩 되며 현장은 눈물바다가 되었다. 또한 후배의 부인은 고인이 쓰던 락카룸에서 고인의 유품을 가지고 나왔다. 그간 후배가 입고 일하던 작업복과 안전모 그리고 그 동안 용돈을 받아 모은 것으로 보이는 20여만 원의 구겨진 지폐들은 유족과 동료들의 마음을 더욱 울렸다. 이후 후배는 화장을 하였고 그의 육신은 한줌의 재를 남기고 납골당에 안치되었다.
그후 후배의 죽음으로 사내 다이빙 동호회는 존폐의 위기에 처했다. 비록 공식행사가 아닌 개인적으로 당한 사고이긴 하지만 회원들은 실의에 빠졌다. 이후 동호회에서는 다이빙 동호회를 해체했다. 또한 3개월이 지난 12월 중순쯤 함께 다이빙을 다녔던 회원들이 후배의 넋을 위로하고 달래기 위해 후배가 발버둥 치다 떠난 그의 고향 앞바다에 추모비를 세우기로 했다. 동료 다이버들은 십시일반 돈을 걷었고 회사로부터 약간의 지원도 받아 추모비를 제작했다.
동료다이버! 수중속 명당에 추모비 세우다12월이라 날씨가 쌀쌀하지만 드라이슈트를 입은 다이버들은 추모비를 배에다 싣고 마침내 현장에 도착했다. 그곳은 육지에서 약 30미터가 떨어진 곳으로 수심은 6~7미터의 깊이였다. 추모비를 줄로 묶어 바닷속에 가라 앉히고 바닷속에 들어가서 태풍이 몰아쳐도 쓸려 떠내려가지 않게끔 좋은 포인트에 추모비를 세웠다. 추모비가 자리한 곳은 수중여가 즐비해 있어 고기들도 많이 노는 명당자리였다. 추모비 설치 작업이 마무리 되고 동료들은 배에 올라타 육지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