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원한 스승이여, 부디 설운 마음 접으시고 영면하소서

새벽을 알리는 자유의 종소리로 돌아와주소서

등록 2009.08.24 16:47수정 2009.08.24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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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9년 9월 6일 3선개헌반대연설중인 김대중 대통령
1969년 9월 6일 3선개헌반대연설중인 김대중 대통령김대중도서관 홈페이지

김대중 대통령님,

당신께서 토인비를 마음의 스승으로 생각하셨듯,
저도 당신에게 직접 배운 바는 없지만,
항상 당신을 마음속 스승의 한 분으로 생각해왔습니다.
당신이 '도전과 응전'의 역사철학을 토인비에게 배우셨듯
저는 끝없는 고난과 싸움으로 얼룩진 당신의 삶속에서 '도전과 응전'을 배웠습니다.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
어느 무더운 여름날을 저는 잊을 수 없습니다.  
날이 너무 더워 잠시 은행에 들렀다 손이 심심해 우연히 펼쳐본 당신의 책.
전 바로 서점으로 달려가 아껴두었던 도서상품권으로 당신의 책을 샀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채 돌아오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서 끝까지 읽었더랬지요.
그 더운 여름에도 등뒤를 오싹하게 만드는 떨림. 떨림. 떨림.
그날의 떨림을 전 아직 잊지 못합니다.

그렇게 전 당신을 알고, 5.18을 알고,
이 땅의 독재정권이 저지른 만행을 알고,
이 땅의 수많은 열사들의 피울음을 알고,
당신을 비롯한 수많은 거룩한 희생이 이룩한 이 땅의 민주주의를 알았습니다.
당신은 그렇게 어린 저를 눈뜨게 한, 세상으로의 통로였습니다.

옥중에서, 그 두려운 죽음의 문턱앞에서도,
우리나라와 겨레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한 당신의 기도를 기억합니다.

 1980년 사형선고를 받고 수감중이던 교도서에서 부인에게 보낸 김대중대통령의 옥중서신
1980년 사형선고를 받고 수감중이던 교도서에서 부인에게 보낸 김대중대통령의 옥중서신김대중도서관 홈페이지

사랑하는 주님, 우리나라와 겨레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첫째, 이 나라의 국시는 민주주의입니다. 민주주의만이 자유의 길이요, 경제적 평등의 길이요, 사회적 복지의 길입니다. 민주주의만이 국민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보람과 자랑을 느낄 수 있는 길입니다. 주여, 국민의 행복을 위해서, 국가의 안정을 위해서 진정한 민주주의가 이 나라에 확고하게 이루어지도록 은혜를 베푸소서.


둘째, 백성이 나라의 주인이며 역사의 주체입니다. 그러나 민중은 언제나 소외되고 그 권리는 무시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민중의 자기 권리의 회복은 스스로의 각성과 노력과 희생에 의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으며 그것만이 정도입니다. 주여, 우리 겨레가 주님의 뜻에 따라 폭력과 파괴를 배제하되 그러나 끈질긴 노력과 전진으로 주님이 주신 천부의 권리를 완전히 누릴 수 있도록 그들을 깨우치고 일으켜 주소서.

셋째, 이 나라는 분단과 동족상잔의 쓰라린 역사 속에 살고 있는 유일한 나라입니다.
공산주의의 위협은 지금도 여전합니다. 지도자와 국민이 모두 각성해서 이 나라에서 자유와 정의와 번영을 동시적으로 실천하여 공산주의에의 튼튼한 방벽을 이루고, 그들로 하여금 무력통일을 단념하고 평화적인 공존과 통일의 길에 응해 오게 하는 태세를 갖출 수 있게 하소서.


넷째, 이 나라의 정치인, 경제인, 언론인, 법관 등 국가 운명에 대한 관건적 입장에 있는 이들이 국가 운명의 장래에 대한 두려운 경계심과 인간의 명예나 부귀의 허망함을 해방 이후의 많은 교훈적 사례를 통해서 깨닫고, 모든 판단과 행동을 국가와 국민대중을 중심으로 할 수 있도록 그들의 양심을 일깨우고 그들의 용기를 북돋아 주소서.

다섯째, 이 땅의 모든 고난 받는 이들의 각성과 결단으로 자기 운명과 역사의 주인이 되게 하여 주시고, 의롭게 살다가 지금 고초를 당하는 사람들과 그 가족들에게 주님의 자비와 은혜를 넘치게 주시어 그들이 주님의 영광과 승리를 보고 노래하게 하소서. 아멘.

30여년전에 하신 당신의 옥중 기도가
왜 지금 이토록 가슴에 사무치는지 다시 마음 한 켠이 저려옵니다.
당신이 민주주의를 이룩해 놓은 2009년의 대한민국에서,
왜 우리가 이토록 서럽고 억울해야 하는 것입니까?
왜 당신을 보내는 마음이 이토록 서러워야 하는 것입니까?
나라와 겨레를 위해 덕담을 해주셔도 모자랐을 당신의 여생이
왜 또 다시 걱정과 분노를 토해내는 시간이 되었어야 하는 겁니까?

그 피맺힌 억울함을 짓누르고서라도 당신이 멈추지 않는다면,
보복의 역사는 반복되고, 이 나라 민주주의 역사 역시 거꾸로 흐를 것이라는
그런 피맺힌 용서를 하고 이룩하신 이땅의 민.주.주.의.

그것이 역류해가는 모습.
그 모습을 누구보다 참을 수 없었던 당신을 생각하면,
그 억울한 마음을 안고가신 당신을 생각하면
다시 가슴에 눈물이 흐릅니다.

잘있거라 내 강산아 사랑하는 겨레여
몸은 비록 가지마는 마음은 두고 간다.
이국땅 낯설어도 그대 위해 살리라.

이제 가면 언제올까 기약 없는 길이지만
반드시 돌아오리 새벽처럼 돌아오리
돌아와 종을 치리 자유종을 치리라.

잘있거라 내 강산아 사랑하는 겨레여
믿음으로 굳게 뭉쳐 민주회복 이룩하자.
사랑으로 굳게 뭉쳐 조국통일 이룩하자.

- 이제 가면, 김대중 <1982년 12월 23일 미국으로 출발을 앞두고>

김대중 대통령님,
저승땅 낯설어도 부디 우리 국민 생각하시여,
가끔은 새벽을 알리는 자유의 종소리로 돌아와주소서.

가시는 순간까지 당신의 마음을 짐지우던,
또 다시 상처입은 이땅의 민주주의.
이 고난의 도전에 처한 저희들에게 자유의 종소리 들려주소서.

당신의 종소리를 듣는 새벽.
모두 다함께 손잡고 후회없는 응전으로 이겨내어,
이땅의 민주주의를 제자리에 가져다 놓겠습니다.
다시 이룬 민주주의로 이 나라 통일의 밑거름이 되겠습니다.

나의 영원한 스승이여,
부디 설운 마음 접으시고 영면하소서.

 부디 영면하소서....
부디 영면하소서....김대중평화센터
#김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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