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에 수은중독으로 목숨을 잃은 문송면군.
노동자역사 한내(www.hannae.org)
지난 1988년 7월, 한 소년의 죽음이 한국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영세공장 노동자 문송면(당시 15세)군.
충남 서산이 고향인 문군은 중학교를 졸업한 뒤 "야간고등학교에 다닐 수 있다"는 말에 혹해 87년 12월 친구들과 상경해 서울 영등포의 허름한 공장에 취직했다.
문군이 일하던 곳은 온도계와 압력계를 만들던 협성계공이라는 작은 회사였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학교에 다닐 수 있다는 말에 문군은 수은 수증기가 가득찬 작업실에서 하루 종일 일을 했다.
공장 근무 두 달 만에 수은중독... 정부도, 회사도 외면한 죽음하지만 공장 근무 두 달만인 88년 2월, 시름시름 앓던 문군은 휴직계를 제출해야 했다. 다음달 문군은 서울대병원에서 '수은중독'이라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듣게 된다.
가족들은 공장에 항의하고, 정부에 산재신청을 했지만 회사도 노동부도 모두 문군의 직업병을 인정하지 않았다. 피나는 싸움 끝에 가족들은 88년 6월 29일 직업병 판정을 받아냈지만, 사흘 뒤인 7월 2일 문군은 허망하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회사도, 노동부도 책임지려 하지 않았던 어린 소년의 죽음 앞에 나선 사람이 당시 평민당 총재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었다. 문군의 사망 소식을 전해 들은 김 전 대통령은 빈소가 마련된 여의도성모병원에 직접 찾아가 고개를 숙였다.
당시 문군의 외로운 싸움을 돕던 김은혜 부천생협이사장은 "야당 총재가 직접 병원까지 와서 유족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모습에 유족들이 큰 힘을 얻었다"고 회고했다.
문군의 가족을 만난 김 전 대통령은 "어린 생명이 이렇게 스러진게 너무 마음이 아프다"며 "다시는 이런 아픈 죽음이 없도록 관심을 갖고 열심히 하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그 뒤, 김 전 대통령은 약속을 지켰다.
88년 당시 '국회 노동위 3인방'이었던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이해찬 전 총리, 이상수 전 의원을 독려하며 정부에 문군 사망의 책임을 물었다. 김 이사장은 "김 전 대통령은 정말 민초의 아픔과 고통에 애정을 갖고 있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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