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동 전 군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
오마이뉴스 권우성
이 목사는 "우리의 욕심이 과했던 것 같다"며 "이 엄혹한 세상에 그분이 살아나셔서 뭔가 조금 더 역할을 해주기를 바라는 것은 정말 염치 없는 무례였던 것 같다"고 애닳아했다. 무엇보다 이 목사는 "김 전 대통령님은 신앙이 깊은 분이었다"며 "쉽지 않은 원수 사랑을 손수 실천했던 위대한 어른 한 분이 가셨다는 데 대해 애도하지 않을 수 없다"고 슬퍼했다.
1976년 '3.1 민주구국선언' 사건으로 김 전 대통령과 첫 인연을 맺게 된 이 목사는 "중앙정보부에서 조사를 받고 서울구치소로 이동하던 중에 그분을 처음 만났다"며 "71년 대통령선거에서 이미 정치적 거목이 되신 분이었지만 남들을 세심하게 배려하는 인간미가 풍부한 분이었다"고 회상했다.
'3.1 민주구국선언'은 1976년 3월 1일 명동성당에서 개최된 3·1절 기념 미사와 기도회에서 윤보선·김대중·함석헌 등 각계각층의 지도급 인사들이 발표한 민주선언으로 박정희 대통령은 이들이 정부전복을 선동했다는 혐의로 대량 구속했다.
이해동 목사는 "3.1 민주구국선언 사건으로 투옥된 교계 인사들은 그때부터 김 전 대통령과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인연이 생겼다"며 "눈물도 많고, 어려운 사람을 보면 그냥 못 지나치는 아주 여린 분이었다"고 회고했다.
특히 이 목사는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해 "원칙과 철학을 겸비한 정치인이었다"며 "대통령이 되려고 했던 건 대통령병 환자여서가 아니라 대통령이 돼서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신념이 가득 했기 때문에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 대선에 도전했던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 전 대통령을 정치적 테크닉이 뛰어난 정치인이 아니라 신념과 철학, 원칙을 밀어붙였던 정치인이었다고 평한 이 목사는 "김 전 대통령이 가진 이성과 원칙 때문에 '현실주의자'들에게는 '이상주의자'라고 욕먹고, 또 '이상주의자'들에게 '현실주의자'라고 비판을 받았다"며 "그것 때문에 고초를 겪은 것"이라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원칙을 실천하는 과정에서도 마구잡이식 투쟁 일변도의 모습은 없었다고 평한 이 목사는 "늘 현실적으로 실천이 가능한 것부터 풀어가는 지혜가 있었던 분"이라며 "대통령은 그가 원하는 목표가 아니었고, 다만 그가 원하는 바를 실현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에 불과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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