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종사촌 마냥 즐겁게 노는 아이들 언어에는 국경이 없나 봅니다.
전득렬
휴가 내내 그 이름 '에띠엥'을 한 번도 불러 보지 못했습니다. 프랑스 말이라고는 '봉쥬르' 정도밖에 모르는데 이름을 불렀다가 혹시 반응을 보이거나 가까이와도 할 말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동서지간은 밤새 술도 마시고 손위 동서가 손아래 동서를 군기(?) 잡기도 하고 화투 놀이를 하거나 윷놀이도 할 법한데, 도무지 정서가 맞지 않아서 눈만 마주칠 뿐입니다.
그런데 어이 된 일인지 프랑스 동서 '에띠엥'이 '형님'하고 부르며 나에게로 다가왔습니다. 빵을 먹다가 화들짝 놀란 나는 처제를 불현듯 쳐다보았습니다. 옆에 있던 처제는 "친하게 지내라고 '형님'의 뜻과 단어를 가르쳐 주었다"고 합니다.
참 내, 이런 난감할 때가…. 저는 할 말이 없었습니다. '어이'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예스'하자니 영어라 우습고, '봉쥬르'하자니 말도 안 되고, '응, 레몬 서방'하자니 못 알아들을 테고…. 순간 저는, 마침 식탁에 있는 빵을 가리키며 먹으라는 시늉을 하며 한 마디를 하고 말았는데 그만 웃음바다가 되었습니다.
"에띠엥~, 뚜레주르, 빠리 바게트, 브레드 피트, 잍트!"갑자기 생각난 우리나라 빵집의 이름들. 모두 동원해서 읊어 보니 의미가 그런 대로 통하는 근사한 프랑스 말이 되었던 것입니다. "뚜레주르(매일매일 만든 신선한) 빠리 바게트(프랑스 빵), 브레트 피트(최고의 빵)"이라는 나름대로의 의미를 가지고 이야기했는데 그것을 대충 알아듣고는 프랑스 동서는 박장대소했습니다.
한국 최고의 휴양지, 다리 밑에서 휴가를 보내다처가는 4대가 함께 모이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처제를 기준으로 처제의 아들 요엘과 제 딸 예은이 그리고 처제의 시부모님과 친정부모님 처제의 할머니까지 모였으니 나라와 세대는 다르지만 4대가 모인 것입니다. 처제는 한국어와 프랑스어를 양쪽에서 통역하느라 분주했습니다.
이 대가족을 위한 식사준비를 하는 장모님은 한국 사위인 저와 프랑스 사위인 '에띠엥' 두 사위를 위해 씨암탉을 잡는 등 며칠 동안 단단히 준비를 하셨고, 근사한 저녁식사 후 모여서 노래를 부르는 등 프랑스풍의 휴가는 밤이 깊어 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