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청광장에서 열릴 예정인 '4대강 저지 범국민대회'를 경찰이 서울광장 사용을 불허한 가운데 지난 6월26일 오전 서울 시청광장에서 야4당 의원들과 시민들이 서울광장 개방과 4대강 정비사업 중단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이자 경찰들이 경찰버스로 차벽을 쌓아 무대차 등 집회 장비 반입을 막고 있다.
유성호
내 어릴 적 기억은 마당에서 시작된다. 내가 살던 산골 마을의 모든 집에는 마당이 있었다. 집은 초가집으로 보잘 것 없었지만 마당만은 넓었다. 그 마당 구석에는 윤기 나는 잎들과 탐스럽게 익어가는 감이 주렁주렁 달린 감나무가 몇 그루 있었다. 그 옆에는 우물이 있고, 사립문 옆에는 꽃밭이 있었다.
아침마다 일찍 일어나신 아버지가 제일 먼저 하시는 일은 싸리비로 마당을 쓰시는 일이었다. 내가 눈을 비비고 나왔을 땐 언제나 마당에는 빗자루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고, 몇 마리 참새가 종종걸음을 치며 놀고 있었다. 우리 조무래기들은 그 마당에 모여 구슬치기, 땅따먹기, 비석치기, 고무줄놀이 등을 하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마당은 우리의 놀이터였고, 우리는 이 마당에서 자랐다. 마당이 우리를 키웠다.
마을 입구나 집 사이 넓은 곳엔 너른 마당이 있었는데, 우리는 그곳을 백구마당이라고 불렀다. 그곳에선 동네 꼬마들이 모여 하루 종일 놀았다. 한국전쟁 직후여서 그런지 우리는 '빵빵'이라는 병정놀이를 즐겼지만, 숨바꼭질이나 술래잡기로 조용한 날이 없었다.
마을의 소통공간인 '백구마당'을 떠올리다백구마당은 우리 꼬맹이들에게 누군가와 더불어 사는 이치와 방법을 가르쳐주는 선생이었다. 마을에서 공동관리 하며 누구나 어느 때나 쓸 수 있는 이 백구마당은, 어른들도 거의 매일 모이는 곳이었다. 들일을 끝낸 어른들은 자연스럽게 이곳에 모여 이웃 걱정, 나라 걱정, 마을 염려를 했다. 어른들은 저녁을 먹고 다시 모여 담배 한 대씩을 물곤 농사 걱정, 나라 걱정을 이어갔다.
명절날은 백구마당도 장날이었다. 설엔 명절 인사를 끝낸 마을 사람들이 모여 윷놀이를 했다. 정월 대보름 저녁이면 꼬마들은 쥐불놀이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어른들은 낮에 꺾어다 쌓아 논 생솔가지로 달집을 지었다. 어느 마을 달집의 연기가 제일 높이 올라가나, 이웃마을과 내기를 하면서 즐기곤 했다.
마을 어른들은 명절 때면 특별히 음식과 술을 마련해 마을 젊은이나 아이들이 마음껏 먹고 마실 수 있게 해줬다. 젊은이들은 탈을 만들어 쓰고 마을 어른들을 흉내 내며 그들을 비판하기도 하고 비꼬기도 하며 평소의 답답한 마음을 풀었다. 우리나라 탈놀이가 이런 백구마당에서 생겨났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렇게 백구마당은 마을 사람들 마음을 하나로 모으게 하고 소통하게 하고 이웃마을과 연대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 왔다. 마을에 생긴 어려운 일들은 이 백구마당에서 해결됐고, 마을의 평화는 이 백구마당을 통해서 이뤄졌다.
서울 백구마당, 서울광장을 시민에게 돌려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