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어진 후배를 일으키고 있는 착한 처자가 바로 접니다.
이상미
그렇게 인연을 맺게 된 검도는 일상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건강한 취미가 되었습니다만, 애초부터 이렇게 바람직한 마음가짐으로 운동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지요. 처음에는 단순히 몸을 움직여 열량을 소비하는 운동 이상의 의미를 두지 않았습니다.
두 달 안에 자그마치 9㎏를 감량했는데 그 몸무게 유지하느라 나름 이런저런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별로 대단한 요법을 한 건 없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참 힘들었지요. 음식 조절하겠다고 항상 양이 적은 도시락을 들고 다녔고, 걸어서 오르고 내리는데 20분 걸리는 언덕을 꼬박꼬박 걸어 다니면서 체육관에 갔고요.
간식은 일체 사절. 꼭 먹고 싶다면 열량이 100㎉가 넘지 않는 음료수를 마시고, 하루 섭취 칼로리를 일일이 계산해서 남는 칼로리가 있을 때만 먹었습니다. 그 당시 제가 지킨 원칙은 간단했습니다. 적게 먹고 많이 운동하는 것. 하루 섭취 칼로리를 1500㎉로 제한했는데 실제 성인 여성 섭취 칼로리가 약 2300㎉ 정도이니 식탐이 강했던 자신이 참 열심히 참았습니다.
그때는 살 빼는 재미에 빠져 무리하는 줄도 몰랐습니다. 일단 살을 빼니 강의실에서 "와, 이렇게 팔뚝 가는 분이 검도하세요?"라고 말을 거는 남자 선배들이 생겼으며, "어머 기집애 운동 하더니 완전 쫙 빠졌네?"라는 여자 동기들의 부러움 섞인 말을 들으면서 내 몸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기까지 했답니다.
게다가 가장 좋았던 것은 55, 66 사이즈밖에 없는 우리나라 여성복 시장에서 77사이즈를 입는 여자로서 겪었던 비애를 더 이상 겪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죠. 아주 마른 옷만 아니라면 이것저것 원하는 디자인의 옷을 사이즈 구애받지 않고 고를 수 있다는 것, 한참 외모를 꾸미는 데 재미를 들인 20대 초반 여성에게는 꿈같은 일이었네요.
살빼기보다 멋진(?) 일에 정진하다그리하여 살 뺀 여자가 누릴 수 있는 각종 즐거움을 만끽하는 동안, 몸은 내가 무리하고 있다는 신호를 여러 차례 보냈습니다. 힘이 없고, 자주 지치고, 저혈압에 빈혈기, 성격이 조금 날카로워지는 경향이 있었지만 거의 무시했습니다. 어떻게든 빠진 몸무게를 유지하려고 노력에 노력을 거듭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역시 그때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하고 후회합니다.
그동안의 식이요법이 과했었는지 어느 일요일 아침, 급기야는 성당에서 미사 보는 중 저혈압으로 주저앉아 버렸습니다. 갑자기 풀썩 주저앉아 계단에서 몸도 가누지 못하는 누나를 친절하게 부축도 해주고 어지러움 가시라고 초콜릿도 사준 동생이 그날만큼 멋있어 보인 적은 없었습니다.
집에 돌아와서는 아버지에게 '그런 식으로 안 먹다가는 나한테 혼날 줄 알아라'라는 엄명을 듣고 반성함과 더불어 음식 조절을 향한 저의 험난한 여정은 막을 내렸습니다. 지금은 '적게 먹고 많이 움직인다'가 아닌 '적당히 먹고 적절한 강도로 운동한다'로 방침을 바꿨습니다.
그러다보니 이왕 시작한 운동인 검도에 더 많은 관심을 쏟기 시작했지요. 다이어트와 상관없이 자신의 몸을 가꾼다는 것은 멋진 일이라 생각했고, 처음 정들이기 시작한 일은 뭐든 우직한 소 마냥 끝까지 하는 성미인지라 계속 수련에 정진, 또 정진했습니다.
다리는 더 두꺼워지고 뱃살도 빠지진 않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