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장산 단풍놀이 갔다가 촬영한 사진(1964년). 두 분은 서커스나 영화구경도 항상 함께 다녔는데, 부부싸움이나 욕하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게 너무도 자랑스럽다.
조종안
나는 70년대 중반부터 결혼하던 80년대 초까지 가게가 딸린 셋집에서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효심으로 잘해 드리려고 하기보다는, 어머니가 밥도 해주고, 빨래도 해주고, 말동무도 되어주는 등, 내가 아쉬워서 함께 지냈다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인천에 사는 둘째 누님 집에 가고 싶다고 하면 모시고 가고, 시민문화회관에서 흥부전을 공연하면 함께 관람하고, 친구들과 놀러 가신다고 하면 비용도 드리면서 친구처럼 재미있게 살면서도 가까이 다가갈 수가 없었다. 어머니 몸에서 나는 역겨운 냄새 때문이었다.
이상하게도 저승사자처럼 무섭고 엄했던 아버지는 향수를 사용하지 않았어도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넉넉한 노인 냄새를 풍겼다. 아침 햇살 아래에서 신문을 읽을 때나 담배를 피울 때도 곁으로 바짝 다가가고 싶을 정도로 체취가 좋았다.
그런데 아버지처럼 매일 양치질을 하고, 건강 관리도 잘하시는 어머니는 그게 아니었다. 코흘리개 시절에 용돈도 주고 아버지가 말리는 참고서도 잘 사주셨는데 근접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냄새가 심했다. 내가 너무 신경이 예민한 것 아닌가도 생각해봤지만, 병원에 다녀온 어머니 설명을 듣고는 포기해버렸다.
순서로 따져도 어머니보다 12년이나 위인 아버지에게서 역겨운 노인 냄새가 나야지, 동네에서 두 번째 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부지런하고, 집에 오는 손님마다 칭찬할 정도로 음식 손맛이 뛰어났던 어머니에게서 냄새가 난다는 것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결혼생활은 부부의 성관계가 좌우한다고 믿던 20대 후반 어느 날, 잠자리에서 막 잠들려는 어머니에게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엄니, 결혼혀서 늙으믄 무슨 재미로 산대요?""부부는 나이를 먹으믄 정으로 사는거여. 그러니께 쓰잘디 없이 싸댕기지만 말고 결혼헐 시악씨 깜이나 알어봐···."당시에는 '나이를 먹으면 정으로 산다'는 어머니 대답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살아갈수록 부부싸움 횟수가 쌓이는 만큼 미움도 늘어날 것이고, 매력적인 몸매와 예쁜 얼굴도 주름으로 흉하게 변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근디 나는 아무리 음식을 잘허고 서비스가 좋은 영화배우 각시라도 마흔 살이 넘으믄 함께 살기가 어려울 것 같어서 고민이랑게, 늙으믄 엄니처럼 몸에서 냄새도 날 것이고···.""야야, 부부는 나이를 먹을시락 정이 깊어져서 냄새도 정으로 덮어주고 흉도 정으로 덮어줌서 사는 거싱게 걱정 말어. 술만 마시믄 고샅 담박질 허는 정복이 아자씨네도 예순이 되드락 쌈을 험서도 잘만 살고 있잖여···."마흔이 넘으면 늙은이로 취급하던 시절이라서, 생각이 짧고 단순했던 20대 후반 젊은이였으니 미래가 걱정되어 어머니에게 토로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세 치 혀가 사람잡는다'는 속담이 떠오르면서 '늙으믄 엄니처럼 몸에서 냄새도 날 것이고' 대목이 죄송한 마음과 함께 후회가 된다.
큰외숙모와 어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