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산사의 연못화마의 흔적이 아직 남아있긴 하지만 낙산사는 본래의 모습을 찾아가고 있었다.
박봄이
추모 기간 동안의 신혼여행우리의 신혼여행은 전국일주로 계획되어 있었다. 바닥을 친 경제 상황에 해외 나가 돈 쓰느니 차라리 전국에 가보지 못한 곳을 둘러보자는 취지였다. 그리고 해외여행쯤, 나이든 후에도 얼마든지 갈 수 있지만 전국일주는 이번이 아니면 아무래도 힘들 것 같았다. 언제나 빠지지 않는 나의 동반견 복삼브라더스와 함께 바람을 가르며 우리나라 곳곳을 달리는 것. 지금 생각해도 그 선택엔 후회가 없다.
하지만 당시에는 신혼여행 자체를 취소하고 싶었다. 빚만 안고 끝난 결혼식, 아버지의 늘어진 어깨, 그리고 내 마음 속 영웅이셨던 분의 죽음. 어쩜 이리도 5월 23일은 잔인하기만 한 것일까. 이런 기분으로 신혼여행을 꼭 갈 필요가 있겠냐는 생각. 하지만 오늘 마음고생하신 어른들을 위해선 다녀오는 게 도리였다. 잘 가서 재미있게 여행하고 돌아오는 모습 보여드리는 게 오히려 마음의 빚을 갚는 거라고.
집으로 돌아와 출발 전 나머지 짐을 정리하며 잠시 TV앞에 앉았다.
TV에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으로 침통하기 그지없었고 난 갑자기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다른 건 아무래도 괜찮았다. 현실의 문제는 어떻게든 해결하면 된다. 우린 잘 살아갈 것이고 앞으로 수많은 날들 중에 하루일뿐일 것이다. 하지만 내 마음 속에 신념과 이상을 공유했던 그 분이 떠났다는 것에는 억장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나의 절망은 그분의 절망에 비해 턱없이 작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이토록 숨통이 죄이는데 도대체 그분의 고통은 얼마나 심장을 갈기갈기 찢어놓았기에 생의 끈까지 놓아버리고자 하신 것일까.
깜깜한 어둠을 뚫고 첫 목적지인 담양으로 향했다. 라디오에선 새벽까지 눈물과 비통함에 젖은 추모방송이 이어졌다. 왜그리 입가에서 양희은의 한계령이 맴돌았는지….
"여행길 내내 추모기간일 거야. 전국에 분향소가 많이 마련되어 있으니까, 보이는 곳마다 들러서 향이라도 피워드리자. 그렇게 하면 네 마음도 좀 나아지지 않겠니? 좋은 곳 가시라고, 고생 많으셨다고 위로해 드려." 가장 행복해야 하는 신부의 퉁퉁 부은 눈이 안쓰러웠던지 위로를 건네는 신랑. 그의 마음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사진을 찍다가, 바다를 거닐며, 혹은 고요한 산사의 투명한 냇물을 지그시 바라보다가도 문득문득 서러운 한숨을 뱉어내는 신부의 등을 다독여주었다.
정치에 대해서는 무지에 가까웠던 20대 어린 시절, <오마이뉴스>에 처음으로 글을 쓰게 되었고 대통령 노무현, 인간 노무현이라는 분을 가슴에 새기게 되면서 이상향의 민주주의 국가, 우리가 아이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세상, 그리고 잘못된 역사를 기억하고 책임을 묻는 것은 국민의 선택이 아닌 의무라는 것. 그 많은 것들을 알고 배우고 깨달으며 비로소 어른이 된 나라는 걸 그는 알고 있었기에 진심으로 나를 위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