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뉴저지 한인유권자센터 김동석 소장
김헌태
미국에서 한국인 유권자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시민운동가 김동석 소장을 인터뷰했다. 이번 미국대선 현장에서 가장 바쁜 한국인을 꼽으라면 김 소장일 것이다. 그는 현장에서 쉴 새 없이 뛰어 다니며 미국의 정치인들을 만나고, 주변 사람들을 힘이 닿는 데까지 도와주고 있었다.
그 동안 그가 보여준 활약상은 이미 한국에도 널리 알려졌는데, 미 하원이 일본의 위안부 관련 인권범죄 행위에 대해 공식사과를 요구하는 결의안을 통과시킬 때 앞장 서 이를 주도한 것으로 가장 유명하다. 또 미국 투표용지에 한국어를 포함시키고, 한국 비자면제 프로그램(VWP) 추진에 큰 역할을 했다.
그는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중대한 역할을 위해 막대한 로비자금을 쓰는 것도 아니다. 또 10년 전 대학동창 관계를 들먹이는 식의 한국에서나 그럴싸해 보이는 어설픈 방식을 쓰는 것이 아니다. 오로지 전략을 짜고 발품을 팔아 한인유권자 운동을 펼치고 또 목표를 달성한다. 그런 점에서 그는 행동하는 전략가이다. 그와 한인유권자센터가 어떻게 정부가 해내기도 어려운 일을 기획하고 주도할 수 있었는지 궁금했다.
친분과 감성에 호소하는 로비, 낡은 방식- 한인유권자센터 활동을 언제부터 시작했는가?"미국에서 시민운동을 시작한 것은 약 15년 전인 1992년 4월 29일 발생한 LA 폭동 이후부터이다. 4·29폭동은 피해를 입고도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했던 아픈 기억이다. 이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당시 LA와 시카고, 뉴욕 세 곳에서 유권자운동이 시작됐는데 지금도 활동하는 곳은 뉴욕뿐이다. 한국계 미국인들은 이제 이민역사에 걸맞은 지위를 확보해야 하고, 그러려면 정치력을 결집시켜야 한다. 미국에 살면서 한국만을 바라보고 살아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미국 사회 특히 주류 사회와의 연결고리를 만들어 권리와 영향력을 확보해 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 한인유권자 활동을 하면서 아쉬운 점은 없었는가? 특히 한국 정부의 역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한국 정부나 한국 국민들은 해외동포를 아예 별개의 사람들로 보거나, 아니면 통제의 대상쯤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나라를 떠나 미국에서 정착한 이들이 한국을 도망쳐 나온 사람쯤으로 보고 거리를 두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한국 정치에 이들을 끌어들이려고도 하는데 매우 잘못된 접근방식이다. 한국계 미국인들의 미국 내 영향력을 키워주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
그것이 미국 최대 압력단체를 만든 유태인들의 방식이고, 대만이나 중국, 쿠바 등도 그런 쪽으로 정책방향을 잡고 있다. 정부와 정부 간 외교에 있어 친분을 동원하는 식의 비공식적 관계로 일을 제대로 해결하기 어렵다. 한국 정부가 대미 외교력을 극대화하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가 바로 한국계 미국인들의 유권자운동에 주목하는 것이다. 유권자 운동을 통해 접근하면 미국의 정치인들은 이를 결코 무시할 수가 없다."
사실 한국 대사관이 현지 한국인들을 골치 아픈 민원을 처리해야 하는 골칫거리로 생각하는 식의 태도를 보이는 것은 비단 미국만에서만은 아니다. 한국 정부가 교민 관리 차원의 시각을 벗어나 당당한 유권자로서의 한인의 역할에 주목해 이들과 연계해 국익 차원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상호 협력한다면 훨씬 발전적 관계가 설정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일본이 미국 내 영향력을 확보하면서 일본계 미국인이 중심이 되고 있는 점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유권자는 정치인 움직이는 지렛대, 비자면제프로그램 등 성과
- 유권자 운동을 통한 위안부 결의안 과정을 잠깐 설명해 줄 수 있겠는가?"먼저 법안을 추진할 의원이 있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한 의원이 일본계인 마이크 혼다 의원 등이다. 그리고서는 공동발의할 의원들을 미국의 한인 네트워크를 이용하여 설득했다. 그것은 지역 유권자 운동 차원에서 이뤄졌다. 우리는 70명 가량의 의원들을 개별적으로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이런 활동이 가능한 것은 유권자이기 때문에 그들을 움직일 힘이 있기 때문이었다. 실제 우리는 지역별로 의원 사무실을 방문해 이를 당당하게 요구했다.
반대로 이 당시 이를 저지하는 총대를 멘 것이 바로 하와이의 이노우에 의원이다. 이노우에 의원은 일본 정부와 잘 연결되어 있을 뿐더러 그에게 이러저러한 형태로 도움을 받지 않은 미국 정치인은 별로 없다. 그는 평상시의 네트워크를 이용해 미 상하원 지도부에게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고 공개적으로 자신이 이 법안에 반대한다는 것을 알리자 법안 발의를 포기하는 의원들이 속출했다.
그러나 낸시 펠로시 같은 의원들은 이미 각종 언론의 지지를 받는 위안부 결의안이 이런 일본 측의 영향력 행사 때문에 중단되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 생각했다. 결국 우리는 발의는 물론 통과에 성공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아래로부터의 유권자 운동을 통해 미국의 정치를 효과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점이다. 위안부 결의안은 인권이슈이기도 하며 한국의 국제 사회에서의 위상을 높여주는 것이다."
- 그렇다면 비자면제 프로그램 추진은 어떤 형태로 진행됐는가? "미국의 법상 비자면제국가가 되려면 원래 3%의 거부율 이하의 국가만 가능했다. 한국은 대략 10% 정도의 거절률을 가지고 있어 비자면제 국가가 되기 어려웠다. 우리는 그렇다면 그 법을 10%를 기준으로 바꾸는 것으로 발상을 전환했다. 우리는 결국 성공했다. 이제 미국의 비자면제 국가 기준이 10%로 바뀌었기 때문에 한국 역시 비자면제국가로 지정될 자격이 생긴 것이다.
한국 정부는 미국 내 유권자단체 등과 협력해 공동의 국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사안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지금까지 하는 식으로 따로 정부 관계자를 만나서 사정하는 식으로는 안 된다. 그 사람들이 왜 해줘야 하나. 반면 유권자는 이곳 정치인들이 움직일 이유가 되는 중요한 힘의 지렛대이다."
한국 외교관이 미국 공무원을 상대로 우리 얘기를 들어 달라고 사정하는 것은 다른 모든 것을 떠나 들어줄 만한 이유가 없다. 상대방이 친한파이길 기대하거나, 한국식의 동문이니까 도와달라는 것은 궁색할 뿐더러 의미가 없다. 유권자를 조직하고 현실 정치에서 목소리를 내는 것만큼 효과적 방식도 많지 않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유권자 센터 활동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종종 소개하기로 하고 이제 오바마로 주제를 옮겼다.
많은 한국계 미국인, 오바마 지지... 백인 중심 사고에서 벗어나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