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시흥시에 전학시켜놓고 보니, 한 반에 73명 콩나물 교실.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서 나는 거짓말을 결심했다. 사진은 서울의 한 초등학교 모습(기사 내용과 특정 관련이 없습니다).
오마이뉴스 권우성
나는 1987년 11월 서울 은평구 응암동에서 경기도 시흥시로 이사 왔다. 서울에서 태어나 자라고, 학교를 다녔다. 결혼을 해서도 서울에서 살았다. 1980년 남편이 사업에 실패를 하고 남의 집살이를 하게 되었다. 그래도 서울을 떠날 생각은 결코 하지 않았다. 가장 큰 이유는 뭐니뭐니 해도 아이들 교육 문제 때문이었다.
하지만 서울에서 내 집 마련의 꿈은 날이 갈수록 요원하기만 했다. 하는 수없이 내 집 마련의 실현을 위해 경기도 시흥시(그 당시에는 시흥군)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정말 힘들고 어려운 결정이었다. 그 때 딸아이는 은평구에 있는 중학교 1학년에 다니고 있었고, 아들 아이는 초등학교 4학년에 다니고 있었다.
딸아이는 경기도로 이사를 가기 전 서울 오류동에 있는 친정으로 주소를 옮긴 뒤 서울에 있는 중학교로 새로 배정을 받게 되었다. 나머지 세 식구는 경기도로 주소를 옮겼다.
그 때 아들아이는 초등학교 4학년이었다. 아이가 너무 어리다는 생각에 시흥군에 있는 초등학교로 전학을 시켰다. 세상에나, 전학을 시킨 첫날 학교에 가보니 아들의 번호가 73번이었다.
그 당시 시흥군은 서울과 가깝고 공기도 좋다는 입소문을 타고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하여 갑자기 인구가 늘어나는 바람에 내가 이사 가고 1년 후 시 승격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인가 작은 교실에 아이들이 73명이나 되었다. 서울에서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말 그대로 콩나물 교실이었다. 칠판만 있고 교탁은 보이지 않았다. 칠판 바로 앞에 아이들 책상과 의자가 놓여 있었다. 교실에 아이들이 너무 많아 교탁 놓을 자리가 없었던 것이다. 제일 앞에 앉은 아이는 공간이 없어 하루 종일 수업을 마치고 나면 고개가 꽤 아팠을 것이다.
1분에 한 아이만 쳐다본다고 해도 1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초등학교 수업시간은 40분이다. 그러니 한교시 수업이 끝나도 한 번도 눈길을 주지 못하는 아이가 많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런 환경에 아들을 전학시켜 놓고 정말이지 심란했다. '이 일을 어찌해야 하나? 먼저 다니던 00 초등학교에서는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저 어린 것을 서울까지 통학을 시켜야하나?' 고민이 시작되었다.
더군다나 그 곳에 이사를 가서 보니 중고등학교를 골라서 갈 형편이 못되었다. 중고등학교가 단 하나뿐인지라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 중고등학교까지 그런 상황이니, 더 이상 고민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아들을 그 초등학교에 그대로 놔둘 수가 없었다. '부모 잘못 만나 너희들이 고생이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을 위해 나머지 식구들이 다시 주소를 옮기기로 했다.
부모 잘못 만난 내 아이들, 그래도 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