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가 김형배 선생
이정환
- <20세기 기사단>을 그리워하는 어른들이 적지 않다.
"대부분 남성들은 군대에 대한 환상을 갖는다. 소년 시절 그런 판타지를 내 만화를 통해 많이 느꼈던 것 같다. 인사동에서 이제는 30·40대가 된 팬들을 만난 적이 있다. 나도 없는 책을 소장한 사람도 있더라. 감개무량하기도 하고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진지하게 할 걸(웃음)."
- 냉전적 세계관에 대한 비판도 있던데."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좋은 비판이다. 실제 <20세기 기사단>에서 아랍 지역을 안 좋은 쪽으로 표현하지 않았나. 편협한 교육을 받았고, 내 생각을 크게 의심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열린 사고를 가질 수 있는 시점도 아니었지만…. 박통이나 전통 시절, 죽으려면 무슨 짓을 못하나(웃음)."
- 작품에서 세련되고 깔끔함이 풍겨나고, 특히 그림체에서 그런 맛이 많이 느껴진다. 그렇게 된 특별한 계기나 이유가 궁금하다."내가 묘사한 세계는 어떤 리얼함이 요구됐다. 총기, 과학적 병기, 전쟁 장면 등을 실감나게 보여주기 위해서는 조금 드라이하다고 할까. 냉정하게 날카롭게 그릴 수밖에 없었다. 또 SF나 군사만화, 처음에는 나도 막연했다. 그래서 공부를 하고 남보다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했다. 물론 지금 같은 세상이 아니어서 정보 습득에 고생을 많이 한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내가 SF나 무기들에 대해 굉장한 지식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렇게 하다보니까 다른 만화를 선보이게 된 것뿐이다."
- 된장찌개의 구수함이 느껴지는 다른 추억의 만화들과는 작품들이 확연히 구분된다. SF만화나 군사만화에 있어 독보적인 평가가 따라붙는데."독보적인 표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작품 범위가 한쪽으로 축소되는 것 같다. 멜로나 사람 사는 이야기 등 다양한 이야기를 그리고 싶다. 문제의 로봇태권V를 그렸더니, 자꾸 그런 쪽으로만 청탁해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됐지만…"
"멜로도 그리고 싶은데, 문제의 태권V 때문에..."작가가 자신의 작품에 대해 '문제의 로봇태권V'라고 표현한다는 것이 낯설다. 누가 뭐래도 '로봇태권V'는 세상에 김형배란 이름 석자를 널리 알린 1등 공신이다.
김청기 감독의 애니메이션 시리즈 못지 않게 선생 작품들의 유명세 또한 대단했다. 아직 태권V 원작자를 김형배 선생으로 알고 있는 이가 적지 않다.
"김청기 감독 친구 이영복씨가 로봇태권V 1편 스틸 사진을 보여주면서 작품을 의뢰했다. 그래서 시나리오에 준해 만화를 그리게 된 것이다. 내가 원작자인 줄 아는 경우도 있던데, 나는 원작자가 아니다. 당시 일본에서 마징가Z 같은 거대 모빌이 유행했다. 우리 색깔인 태권도를 넣었지만, 태권V는 사실 엄밀히 따지자면 일본 로봇물의 아류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한참 세월이 지나고…. 사람들이 만화나 애니메이션 가치에 눈을 뜨고, 뭔가 없나 찾다보니까 태권V에 대한 관심이 갑자기 높아졌다. 애국주의에 부끄러운 이야기가 묻힌 셈이다."
- 자장면이 우리 음식으로 자리잡은 것처럼, 태권V도 그렇게 될 수 있지 않을까."며칠 전, 교토 만화박물관을 다녀왔는데 태권V를 그려달라는 일본인들이 있더라. 우리나라를 대표할 수 있는 캐릭터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