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과 시민들이 4일 저녁 서울 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국민주권 수호와 권력의 참회를 위한 시국법회'에 참석하여 미국산 쇠고기 장관고시 철회와 전면 재협상을 요구하며 법회를 드리고 있다.
유성호
[3신 : 4일 저녁 7시 30분] 뿔난 스님들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의 눈물 못 보는 외눈박이" 저녁 6시 40분께 조계사를 출발한 '시국법회' 대열이 서울시청 앞 광장에 도착해 그곳에서 노래 공연을 즐기던 시민들과 합류했다. 서울시청 앞 광장에는 2만여 명이 법회에 참가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무대 차량 옆에서 치는 법고가 장중하게 울려퍼지고 행진을 마친 스님들이 무대 앞으로 들어왔다. 시민들과 신도들은 이들을 박수로 맞이했다. 삼귀의와 예불을 하고 반야심경을 외는 것으로 '국민주권 수호 권력참회 발원 시국법회'가 시작됐다.
이번 시국법회를 공동으로 추진했던 수경 스님(불교환경연대 상임대표)은 연단에 올라 "오로지 정진에 매진하시는 이 시간에 산중 어른 스님들께서 오늘 이자리에 오시도록 배려해주신 것에 대해 정말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고 먼저 인사를 건넸다.
수경 스님은 "오늘 우리는 서울 도심 한가운데를 정진의 마당으로 삼고 벼랑 끝으로 내몰린 민주주의와 국민주권의 수호를 위해 이 자리에 모였다"며 "'온 생명의 무리가 바로 보살의 정토'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른 것이고, '중생을 떠나서 깨달음을 추구한다는 것은 소리를 없애고 메아리를 구하려는 것'과 같기 때문"이라고 이날 시국법회의 의의를 설명했다.
수경 스님은 이어 "국민의 정당한 주권 행사가 국가권력의 폭력에 의한 공포 때문에 주저앉고 말면, 앞으로 우리 국민의 삶은 생존자체가 굴욕이요, 인간적 자존이 무너져버리는 일"이라며 "어떤 이유로든 용납되어서는 안될 일"이라고 강조했다.
"현 정부와 보수언론은 촛불 대중을 '폭도'로 몰아가려 했고, 옹색하게도 집시법을 들먹이며 범죄의 낙인을 찍으려 했다. 쇠고기 졸속협상으로 비롯된 정당한 국민 저항에 따른 난국의 책임을 이른바 '촛불 세력'에 전가하려 했다." 이런 비판을 펼친 수경 스님이 "앞으로도 집시법을 들먹인다면 정부를 떠받치는 민주주의의 기둥인 3·1운동과 4·19, 그리고 6·10 항쟁을 허물어버리는 일"이라고 말하자 청중들의 박수가 쏟아졌다.
"대통령께서는 부디 창조적 발상으로 현재의 위기를 기회로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진보와 보수의 갈등을 뛰어넘을 화합의 촛불을 들고 나오십시오. 물로 불을 끄려 들면 모두가 패배자가 되고 맙니다. 더 큰 불로 세상을 밝히자고 제안하십시오. 그러면 국민들은 믿음으로써 기회를 줄 것입니다." 수경 스님이 "IMF 때 금모으기에 나서고, 얼마 전 태안 기름 유출 사건 때 자발적으로 현장에 달려가던 국민들을 떠올려 보라"며 이렇게 말하자 또 한번 청중들의 환호가 이어졌다.
"책임의 소재와 관계없이 먼저 나라의 주인 노릇을 하던 그 국민과 현재의 촛불 대중이 다르지 않습니다. 당신이 섬겨야 할 국민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수경 스님은 이어 "오늘 우리 모두는 지금 이 세상을 있게 한 공업 중생으로서 모든 허물을 나에게로 돌려 비추는 참회의 기도를 통해 하늘과 자연이 감응하여 우리 모두를 돕도록 하자"며 "오늘 우리의 기도는 촛불의 정신을 생명 평화의 기운으로 승화시켜 우리네 삶의 터전을 진리의 땅이 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법어는 조계종 교육원장을 맡고 있는 청화 스님이 맡았다.
청중들과 서로 삼배예를 교환한 뒤 청화 스님은 현재 이명박 대통령의 상태를 '외눈박이'로 표현했다. 그는 "잘못을 인정할 줄 아는 아량과 겸허함과 이성이 있기 때문에 인간은 위대하다"며 "이런 면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한 눈을 감았거나 아니면 대통령이라는 콩깍지가 씌어서 한 쪽 눈의 시력을 잃었다"고 비판했다.
그는 "예컨대 쇠고기는 보면서 광우병을 보지 못하고 선물보따리에 파안대소하는 미국 대통령은 보면서 국민의 눈물은 보지 못한다"며 "촛불시위의 허물은 보지만 대통령의 잘못은 보지 못하고, 추가 협상까지는 보지만 재협상은 보지 못하고, 뼈아픈 반성까지는 보지만 고쳐야 할 것은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고 말해 청중들의 환호를 받았다.
청화 스님은 "이런 눈 때문에 중고등학생들도 아는 생명의 가치를 대통령은 모르고 있다"며 "30개월 이상의 쇠고기와 광우병 위험물질까지, 그것도 아주 쉽게 수입하기를 결정한 대통령의 태도에는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광우병 쯤은 감수하라는 주문이 담겨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최근의 공권력이 자행한 무자비한 폭력을 보면 이명박 대통령이 과연 민선 대통령이 맞는가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며 "왜냐면 쿠데타로 집권한 대통령이나 쓸 법한 후진국 수준의 낡은 방법을 구사하고 있기 때문이고, 이에 좌시할 수 없어 종교계의 성직자들까지 거리에 서게 되었다"고 말하자 청중들은 "옳소, 옳소"를 외쳤다.
청화 스님은 "양쪽을 다 보지 못하고 한 쪽만 본 것 때문에 쇠고기 협상에서 대통령으로서 막을 것을 막지 못하고 지킬 것을 지키지 못한 점, 그러면서 반대급부도 없이 오히려 주기만 하고 물러서기만 했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며 "두 눈으로 보면 미처 보지 못했던 것도 보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재협상의 당위성도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끝으로 청화 스님은 "국민의 뜻을 좇아 재협상을 선언하고 그로인해 부정적으로 보였던 모든 고정관념이 해소되어 다시금 국민들로부터 지지를 받는 대통령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바란다"고 당부한 뒤 "한 눈으로 보면 촛불만 보이지만 두 눈으로 보면 촛불 속의 영혼까지 보인다"면서 법어를 마쳤다.
청중들은 사회자의 제안에 따라 "한 눈으로 보면 촛불만 보이지만, 두 눈으로 보면 촛불 속의 영혼까지 보입니다"라는 부분을 큰 소리로 함께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