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쇠고기 재협상을 촉구하는 48시간 릴레이 농성이 벌어지는 가운데 22일 새벽 세종로 네거리에서 경찰과 밤새워 격렬하게 대치했던 시민들이 날이 밝아오자 노래를 부르며 대동놀이를 하고 있다.
권우성
22일 새벽 시민들은 한 대의 경찰버스를 끌어냈고, 그 안에는 10여명의 전의경이 있었다. 전의경들은 시민들과 기자들에게 사진 촬영을 하지 말아 달라고 요구했고, 이 요구는 지켜졌다. 그리고 전의경들은 시민들의 '보호'를 받으며 안전하게 차벽 뒤로 돌아갔다. 이런 모습은 <조중동>의 지면에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시위대에게 항의하는 차량운전자는 또 어떤가. 이런 시민들은 거리 시위 시작 이후 늘 있었다. 특별한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반대로 시위대가 외치는 구호 박자에 맞춰 지지를 보내는 차량운전자들도 항상 있었다.
또 한편으로는 경찰과 정부가 시민들을 자극한 측면도 있다. 21일 밤 경찰은 광우병 국민대책회의가 주문한 모래를 실은 2.5톤 트럭이 광화문에 진입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그 전날도 모래 트럭의 진입을 막았다. 서울경찰청의 한 관계자가 "10톤 이상의 트럭이 서울 중심부를 통과할 때는 허가증이 있어야 한다"면서 합법성을 강조했던 것과는 이율배반적인 행태다. 결국 시민 3000여 명의 시민들이 서울역 인근까지 달려가 모래를 비닐봉지 등에 담아왔다.
뿐만 아니라, 경찰은 밤샘 시위 때 선무방송을 통해 "시민들이 경찰에게 돌과 모래주머니는 던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날 돌과 모래주머니로 경찰을 공격한 시민은 없었다. 이 때문에 현장에 있던 기자들조차 "경찰 방송이 계속 시민을 자극하고 있다"고 말했다. 당시 자신을 목사라고 밝힌 한 시민은 "더 이상 정부의 폭력에 맞서 가만히 있는 건 무저항과 다름없다"며 스스로 경찰버스를 넘어 자발적으로 연행되기도 했다.
23일 보도를 보면 <조중동>은 마치 자신들이 과거에는 평화로운 촛불집회를 지지했다는 듯이 말하고 있다. 하지만 촛불집회가 50일 넘게 진행되는 동안 <조중동>은 늘 촛불집회를 폄훼했다.
이들은 여중고생이 처음 촛불을 들었을 때는 물론이고 촛불이 청계광장에 머물러 있을 때도 '인터넷 괴담', '배후조종 세력' '좌파세력의 선동' 등의 수사를 사용하며 촛불을 끄려 노력했다. 이런 눈물겨운 안간힘에도 촛불이 계속 확장될 때는 이명박 정부의 태도를 슬쩍 비판하기도 했다.
하지만 촛불의 규모가 다소 축소되고, 한미 쇠고기 추가협상이 완료되자 <조중동>은 다시 촛불 진화 선봉대로 적극 나서고 있다. 이는 최근 진행되는 정부와 우익단체의 촛불에 대한 반격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다.
시민들이 광고주 압박운동 벌이는 이유를 고민해보라22일 새벽 세종로 주변에는 많은 비가 내렸다. 그때까지 현장을 떠나지 않던 수천 명의 시민들은 우비를 입고 윤도현의 <아리랑>과 민중가요 <처음처럼>에 맞춰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거리에 펼쳐진 거대한 군무였고, 큰 합창이었다.
기자에게 이런 풍경은 낯설지 않았다. 5월 2일부터 시작된 촛불집회에는 늘 웃음과 발랄함이 있었다. 민주적인 과정, 그리고 대화와 토론의 미학을 생략한 답답한 정부에게 시민들은 그런 유쾌한 방식으로 맞서왔다.
늘 배후 조종론과 좌파 적출론에 입각해 촛불을 보도해왔기에 그런 것일까. <조중동>의 감수성은 22일 아침의 군무를 보지 못했고, 촛불집회 내내 시민들이 만들어 낸 민주주의 가치를 외면해왔다.
거리시위가 끝나면 쓰레기봉투를 들고 늘 거리를 청소하는 시민들이 있다. 하지만 이 풍경이 촛불집회 전체 성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건 아니다. 마찬가지로 폭력적 행위를 하는 일부의 모습으로 촛불집회 전체를 평가하는 것 역시 옳지 못하다.
<조중동>은 왜 시민들이 자신들 본사 출입구에 '조중동 폐간'이라 적힌 스티커를 붙이고, 광고주 압박운동을 벌이는지 그 이유를 알아야 한다. 하지만 23일 보도를 보면 아직 그 이유를 모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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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주 압박운동' 앙갚음인가 폭력 촛불? <조중동>의 대반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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