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존 검머 당시 농무부 장관이 딸과 햄버거를 먹으며 쇠고기의 안전성을 일방적으로 홍보한 것을 비판하는 BBC 기사.BBC
▲ 1990년 존 검머 당시 농무부 장관이 딸과 햄버거를 먹으며 쇠고기의 안전성을 일방적으로 홍보한 것을 비판하는 BBC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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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방할 수 있는 위험을 방치했다가 만약 미국에서 유럽과 비슷한 상황이 초래된다면 그 후과를 어떻게 수습할 것인가. 미국에서 축산업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을 놓고 볼 때 아마 공황상태가 초래될 것이다. 이런 위험을 방치하고 키우는 것이 미국에 이로운 일인가?
영국을 휩쓴 광우병 파동이 재연되질 않길 바라지만 마냥 안심하기에는 모든 게 너무 불확실하다. 미국은 광우병의 공포가 유럽을 휩쓸던 지난 1997년 동물성 사료 규제를 시작했다. 하지만 이 동물성 사료 규제 조치는 반추동물에게 반추동물의 부산물로 만든 사료를 금지했을 뿐 다른 동물의 부산물로 만든 사료는 계속 허용했고 이런 사료정책은 지금까지도 계속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영국의 사례에서 보듯이 광우병은 반추동물에게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고 서로 다른 종 사이에서 교차 감염되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런 면에서 미국의 상황은 불안하기만 하다. 미국의 경우 광우병은 밍크에서 처음 발견되었는데, 모피를 만들기 위한 가죽을 벗겨내고 남은 살코기와 부산물은 동물성 사료로 만들어져 소에게 공급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미국에서 동물성 사료가 제조되는 과정을 한번 들여다보자. 미국의 공장식 축산업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화제의 책 <성난 카우보이>를 썼고 토크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 쇼에 출연했다. 윈프리로 하여금 '햄버거 못 먹겠네'라는 그 유명한 발언을 하게 만든 하워드 리먼은 자신의 책에서 그 과정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하워드 리먼은 몬타나 주에서 대를 이어 축산업에 종사했던 사람이다.
"농장에서 나온 가축 이외에 사료업자가 좋아하는 또 하나의 재료는 안락사 시킨 애완동물이다. 전국의 동물 수용소에서는 매년 6-7백만 마리의 개와 고양이가 죽어간다. 예를 들어 로스앤젤스만 하더라도 매월 약 2백 톤의 안락사한 개와 고양이를 사료 공장으로 보낸다. 이런 섬뜩한 혼합물을 빻아서 증기로 쪄내는데… 무거운 단백질 원료는 말려서 갈색 가루로 만든다. 그 중 4분의 1 정도는 배설물이라고 보면 된다. 이 갈색 가루는 가축의 사료뿐만 아니라 대부분 애완동물의 사료에 첨가된다. 축산업자들은 이것을 '농축단백질'이라고 부른다… 미국에서는 9000만 마리의 육우 가운데 약 75퍼센트의 육우에게 '영양가를 높인' 동물성 사료를 일상적으로 먹인다."
섬뜩한 광경이다. 하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97년 동물성 사료 규제정책을 실시한 뒤에도 이런 현실에 변화가 없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소의 피는 여전히 소의 사료로 이용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에서는 지난 2003년 광우병 소가 발견된 뒤 지금까지 모두 세 마리의 소가 광우병에 감염된 것으로 확인됐다. 약 1억 두에 이르는 소를 사육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확률적으로 아주 낮은 가능성일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미국의 경우 광우병 검역체계가 유럽연합이나 일본에 비해 대단히 허술하다는 점이다. 미국의 경우 2003년 12월 첫 광우병 소가 발견되기 전까지 전체 축우의 0.1 퍼센트에 대해 광우병 검사를 실시했다. 광우병 소가 발견된 이후 광우병 검사 대상이 1 퍼센트로 확대되었지만 다시 0.1 퍼센트로 축소되었다.
이에 비해 유럽연합에서는 전체 축우의 25퍼센트에 대해 광우병 검사를 실시하고 있고 일본은 모든 축우에 대해 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만약 유럽연합이나 일본처럼 광우병 검사 대상을 늘리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더구나 그동안 미국에서 확인된 광우병 소 3마리 중 2마리는 언제 어디서 태어나서 어디서 뭘 먹고 컸는지 확인조차 못했다.
이처럼 미국에서는 광우병 파동 이후 유럽연합을 중심으로 정착되고 있는 강력한 동물성 사료 금지조치와 이력추적제, 강화된 광우병 검사 중 어느 하나도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다. 게다가 우리 정부의 '오역' 또는 '거짓말'과는 달리 미국의 동물성 사료 통제조치는 오히려 후퇴하지 않았는가.
현재 미국의 동물성 사료통제 조치는 소의 월령이 30월 미만인 경우 광우병 여부는 확인도 하지 않은 채 특정위험물질을 포함한 모든 부위를 다른 가축의 사료로 사용하고 그 가축을 다시 소의 사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런 무책임한 조치가 아무런 후과를 초래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세상에 그런 요행은 없다.
미 농무부가 자체 조사를 통해 밝혀낸 도축과정의 문제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미국에서 처음 광우병이 발견된 2003년 12월 이후 14개월 동안 도축과정에서 광우병 검역과 관련해 모두 829건의 위반사례가 확인되었다. 이런 현실에서 미국산 쇠고기를 과연 안심하고 먹을 수 있을까?
더 큰 문제는 월령 30개월 미만의 경우 특정위험물질까지 수입하기로 했으니 현재의 합의대로라면 쇠고기 가공품이나 소의 피로 만든 사료 등도 수입될 가능성이 높다. 그럴 경우 광우병 쇠고기가 수입될 가능성뿐만 아니라 광우병이 국내에 확산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문제가 확실히 개선됐다는 얘기는 아직 듣지 못했다.
미국에 가본 사람이라면 적지 않은 미국 소비자들이 'grassfed' 등의 마크가 찍힌 유기농 쇠고기를 먹는다는 걸 알고 있을 것이다. 많은 선량한 미국 시민들이 공장식 축산업에 의해 '제조'되는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을 염려하고 있다. 미국 소비자들의 건강을 위협하는 건 광우병뿐만이 아니다. 항생제와 호르몬 남용, 유전자 변형 사료 사용 등 미래에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모르는 문제들이 한 둘이 아니다.
미국의 허술한 광우병 예방, 검역제도를 비판하는 건 이기적인, 또는 반미적인 행동이 아니다. 이는 대한민국 소비자는 물론 미국 소비자, 나아가 전 세계 소비자의 건강을 위한 것임과 동시에 생명을 소중히 생각하는 지구적인 윤리를 확립하는 일이기도 하다. '내 경쟁자는 세계 각국의 지도자'라는 대통령의 말을 기억한다. 무한경쟁시대에 국익을 위해 국제사회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하겠지만 지구온난화나 먹거리의 안전 문제 같은 지구적인 이슈와 관련해서는 윤리적인 경쟁도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에도 세계적인 지도자가 나와야하지 않겠는가.
지극히 현실적인 차원에서 생각하더라도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을 강화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문제는 아니다. 수입을 하지 말자는 것도 아니고 우선 안전성이 검증된 것부터 하자는 얘기 아닌가. 그 뒤에 미국에서 동물성 사료 강화조치가 제대로 이행되는 것을 확인하고 협상을 거쳐 수입을 확대하면 될 일이다. 소 한 마리 당 광우병 검사 비용이 20달러 정도라고 한다. 검사 두수가 늘어나면 그 마리당 비용은 훨씬 줄어들 것이다. 미국 산 쇠고기의 신뢰를 확보하는데 이 정도 비용도 지출하기 어렵단 말인가. 당장 전수 검사가 어렵다면 유럽연합 수준으로 샘플을 확대하는 노력이라도 보여야할 것 아닌가.
하지만 상황은 정반대다. 미국 정부는 자신들이 가공 처리하는 모든 쇠고기에 대해 자발적으로 광우병 검사를 하려던 기업을 오히려 방해했다. 국내에도 쇠고기를 수출하던 ‘크릭스톤팜스’라는 업체가 일본으로 쇠고기를 수출하기 위해 전수검사를 하려다 미 농무성의 제지를 받고 현재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이것이 무얼 의미하는가?
난 대한민국 국민만큼이나 선량한 미국 시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지구적인 차원의 환경과 생명은 어느 한 국가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촛불시위를 반미로 매도하는 분들이여, 미국 시민들의 안전을 진정으로 걱정해 봤는가. 제발 친미 좀 제대로 하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이광조씨는 현재 CBS PD로 재직 중에 있습니다. 이기사는 인권연대 웹진 주간 <사람소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8.05.19 17:55 | ⓒ 2008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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