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에 걸린 현수막
최현
과천은 정부종합청사가 있는 탓에 공무원이 많이 사는 동네다. 전국에서 땅값이 비싸기로 두 번째 가라면 서러워 할, 전형적인 중산층이 사는 곳이다.
그 동안의 투표 행태로 보면 한나라당 출신 국회의원이 내리 4선을 기록하는, 개혁보다는 보수 색채가 강한 동네다.
이런 곳에 정부의 정책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현수막이 펄럭이고 있다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그러나 과천은 육아 및 교육에 있어서 학부모들의 관심은 그 어느 곳보다도 '개혁적'인 곳이다. 인구 6만 남짓한 소도시에 초등과정 대안학교가 3군데나 성업(?) 중이고 이들을 주축으로 중등과정 대안학교도 몇 년 전에 설립했다.
올해 과천시청에서 초등학교 운동장에 인조잔디를 깔려고 예산을 올렸다가 전액 삭감됐는데, 이를 주장한 시의원을 불평하는 학부모들은 소수이다. 맨 땅보다 인조잔디가 환경적으로 폐해가 심하다는 주장에 공감을 한 것.
몇년 전에 학교 폭력과 왕따로 한 학생이 자살하자 학부모들이 안이하게 대처한 교장을 몰아냈고 이를 모태로 '학교평화'라는 시민단체가 결성되어 활발하게 활동 중에 있다. 어린이도서연구회의 과천 '동화읽는 어른 모임'의 참여도는 타 지역의 추종을 불허한다. 또한 인구 대비 유기농 매장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곳이다.
"농림부 공무원들이 꼭 봐야 해요"현수막의 진원지 역시 '맑은내학교'라는 교육기관이다. 이 곳은 과천에 사는 서민 맞벌이 부부의 자녀를 위해 시민들이 추렴해서 만든 방과후학교다. 지금은 시에서 일부 지원을 받아 약간의 숨통은 트였지만 이전까지는 몇몇 뜻있는 시민들의 후원금에 의존해야 했다. 이 학교의 운영에는 환경운동연합, 한살림, 마을신문, 과천시청공무원노조 등 많은 단체들이 참가하고 있다.
지난 5월 8일 맑은내학교 운영위원회에서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 수입문제는 자연스러운 화두였다. 사실 과천은 초등학교 무료급식을 실시하는 곳이어서 어느 곳보다 민감할 수밖에 없다. 회의에서는 서울 촛불집회에 나가는 것보다 지역에서 사람들끼리 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찾아보자고 해서 나온 아이디어가 바로 '현수막 걸기 운동'이었다. 즉시 문구를 정하고 디자인에 이어 제작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운영위원들이 먼저 깃발을 꼽았다. 각자의 집에, 사무실에, 가게에 가로 1.7m, 세로 1.2m의 현수막이 먼저 걸렸다. 이를 본 동네의 주민들은 신선하다며 환영일색이었다. 부림동에 사는 주부 정아무개씨(46)는 "정부종합청사의 공무원들이 보면 환장할 일"이라며 고소를 감추지 않았다.
"과천에 이 현수막이 걸리는 것은 상징적이 효과가 매우 큽니다, 정부과천청사에 매일 출퇴근하는 공무원들이 국민들의 뜻을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라며 이 아이디어를 처음 제안했던 맑은내학교의 한 운영위원은 현수막의 타깃을 분명히 했다.
처음에는 현수막을 걸기 부담스러워 주저하던 시민들이 점차 동조하기 시작했다. 한두 집 아파트 베란다에 걸리기 시작하더니 이제 과천에서는 이 현수막을 찾는 게 어렵지 않게 됐다. 과천동의 한 빌라에는 아예 전 세대가 이 현수막을 걸었다.
광우병 쇠고기는 좌우의 문제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