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촘촘한 책탑책탑이 곳곳에 촘촘하게 세워져 있는 헌책방 <정은서점>입니다.
최종규
그다지 먼 옛날이 아닌 지난날, 중국 북경은 누가 보아도 ‘자전거 도시’라고 할 만큼 자전거가 빽빽이 다니던 그곳이 아니었던가요. 그런데 어느새 북경에 자전거가 감쪽같이 사라지면서 이렇게 ‘공해 도시’가 되었는지.
자동차 얻어타고 경인고속도로를 달리는 동안, 또 일산으로 들어가는 조금도 자유로와 보이지 않는 ‘자유로’를 달리는 동안, 우리 나라 우리 길이 이토록 뿌옇도록 망가지고 있는데, 이 망가짐을 느끼는 사람이 얼마나 되랴 싶은 마음에 무척 무겁습니다.
자동차 얻어타고 달리는 몸이 가볍지 않습니다. 요사이는 대중교통을 탈 때에도 마음이 무겁습니다. 대중교통이라고 하나, 버스나 지하철이 일으키는 먼지와 매연과 시끄러운 소리들, 그리고 전기 씀씀이…. 웬만하면 두 다리로 걸어서 움직일 수 있는 만큼만 다니고, 자전거로 다닐 만한 거리까지만 나들이를 해야지 싶어요.
(2) 하얀 머리헌책방 <정은서점>으로 찾아갑니다. 문을 당기고 들어서는데, <정은서점> 아저씨 머리가 무척 하얗다는 느낌입니다. 온통 하얗게 된 머리카락에 숱도 많이 빠졌습니다. 제가 아저씨를 처음 뵌 때는 1994년. 어느덧 열네 해? 열다섯 해? 스무 살 앳된 젊은이와 살짝 나이든 아저씨였을 책손과 책방 임자였는데, 살짝 나이든 아저씨가 된 책손과 차츰 할아버지 티가 물씬 나는 책방 임자로.
마침 아저씨는 도시락을 펼쳐 놓고 저녁을 드시려고 합니다. 아저씨는 도시락을 드실 때 막걸리 한 병을 마십니다. 더도 덜도 않고 딱 한 병만. 젊은 날 헌책방 일을 처음 하던 때부터 여태껏 바깥밥 아닌 도시락밥만 드시는 가운데 막걸리도 딱 한 병. “어이, 자네도 막걸리 한 잔 할려?” “아, 아니요, 전 괜찮습니다.” “아니, 술 좋아하면 한 잔 마셔? 따로 사다가 주는 게 아니고, 하루에 한 병씩 마시는데, 사흘 마실 것을 갖다 놓고 있으니까 한 병 드릴 수 있지” “아뇨, 괜찮습니다. 아저씨 나중에 드셔야지요.” “괜찮대도?”
수염이 더부룩하고 얼굴에 조금씩 주름이 잡혀 가고 있는 책손 한 사람한테, 하얀 머리 헌책방 할배가 되어가는 아저씨는 자꾸자꾸 막걸리 한 잔을 내어밀고, 오늘은 손을 내젓는 책손은, 한잔 받아도 좋지만 오늘은 몸이 영 안 좋아서 아쉽게 물리고. 이렁저렁 이야기가 오가는 가운데, 한쪽에 쌓여 있는 책탑을 살펴보면서 <P.앤더슨/장준오 옮김-서구 마르크스주의 연구>(이론과실천,1987)라는 책을 끄집어 냅니다.